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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중동] 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17.12.15 18: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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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는 선언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는 선언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선언으로 중동 지역은 물론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뻔히 알면서도 불쏘시개를 들쑤신 것 같은 이 선언은 세 가지 복합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로 보인다. 첫째는 정치적 배경이요, 둘째는 국제법상의 논의이며, 셋째는 ‘예루살렘 회복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복음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정치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치밀한 계산에 의한 전략가 기질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보인다. 이번 선언은 양면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단 국내 정치에 있어서 여전히 바닥을 드러내는 지지도와 각종 스캔들로 곤경에 빠져 있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국제 정치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예루살렘 문제를 건드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지도자 모하메드 빈 살만과의 중동 재편에 관한 모종의 합의가 배경이라는 분석도 곁들여야 한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 벨트를 약화시켜 중동의 맹주로 부상하려는 사우디 새 지도자의 야심과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결집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켜보려는 트럼프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비밀리에 타진하면서 이스라엘 측에 헤즈볼라(레바논 시아파 무장단체) 공격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니 사우디-이스라엘-미국으로 연결된 삼각 고리가 사실상 확인된 셈이다.

한쪽의 이익을 위해 다른 쪽의 희생을 힘으로 강제하는 국제 정치의 냉엄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언으로 인해 폭발 직전의 화약으로 가득 차 있는 중동 지역에서 앞으로 피해를 입을 수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고립주의를 낳고, 그것은 결국 미국의 이익은 물론 국제사회의 공익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선언을 계기로 트럼프의 미국은 불편부당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완전 포기한 것과 다름 없다.

둘째, 국제법상 예루살렘은 '중립 지대'인만큼 트럼프의 이 선언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예루살렘은 유대교뿐 아니라 이슬람, 기독교 모두의 성지이며, 수천 년간 아랍인들의 실질적인 거주 지역이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 및 유대 국가로 '강제 분할'하면서도 예루살렘만은 국제법상 '중립 지대'로 남겨두었다. 이후 어떤 국가도 예루살렘을 명시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라 여긴바 없으며,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두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뒤에는 그의 지지기반인 유대인이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로 세계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유대인과 트럼프는 이번 '예루살렘 선언'으로 '국제법'을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세계인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며칠 전 프랑스를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수도였다”며, 이는 “성경만 읽어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상 이 도시의 ‘유일한’ 지배자는 없었다. 구태여 나누자면 3,000년의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은 유대인이 지배하던 시대가 약 550년, 기독교도가 다스리던 기간이 약 400년, 무슬림이 통치하던 기간이 약 1,200년 그리고 나머지는 외세가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뒤돌아보면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종교적 ‘상징성’이 강한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보다는 실질적인 고통이 되고 있는 점령지 내 유대인 정착촌, 분리장벽,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 국제법상의 위반 행위에 대한 해결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살펴 볼 때, 이번 선언이 이스라엘에게 결코 유리하게만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셋째, 이 선언의 배경에는 트럼프를 떠받들고 있는 미국의 보수 기독교의 예루살렘에 대한 짙은 신앙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9세기 이래 시작된 소위 ‘예루살렘 회복주의자들’이라 칭하는 이들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메시아가 재림할 마지막 조건이 충족되면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할 것 없이 누구나 그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유대인이 고향 땅으로 돌아오고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적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가 된다는 믿음을 싹 틔운 것이다. 예루살렘 회복주의는 오늘날 미국의 복음주의의 기초가 되었으며, 트럼프의 지지 세력이 갖는 기본 입장이다.

예루살렘의 회복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기 미국의 팽창주의 외교정책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시온주의 운동을 지지한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세우고, 그 도시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고 있을 때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믿음은 성 아우구스투스 이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고, 유대인들의 유랑은 예수에 관한 주장이 진실이라는 증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과도 배치된다. 예수의 무죄는 자연히 유대인들의 유죄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에 참다운 평화가 깃들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최창모(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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