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퇴법안 수정안 통과
집권 보수당 11명 반란표 던져
내각 각료 권한 과도한 확대 제동
2단계 협상 준비 英 정부에 부담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법안과 관련한 의회 표결에서 첫 패배를 경험했다. 브렉시트 1단계 협상을 마무리하고 2단계 협상을 준비 중이던 메이 총리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영국 하원은 집권 보수당의 도미니크 그리브 하원의원이 발의한 ‘EU 탈퇴법안’ 수정안을 찬성 309표, 반대 305표로 가결시켰다. 그리브 의원을 포함, 보수당 의원 11명이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메이 총리에 등을 돌린 것이다. 영국 하원에서 보수당은 315석을 차지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EU 탈퇴법안은 1972년 유럽공동체법을 폐기하고 약 1만2,000개의 EU법규를 영국법규에 옮기는 내용을 골자다. 이 법안에는 내각 각료가 탈퇴협정을 이행할 행정명령 권한을 갖는 대목이 담겼다. 하지만 정부의 권한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내각 각료에게 행정명령 권한을 허용한 부분이 논란이 되자, 그리브 의원은 EU 탈퇴 협상과 관련해 어떤 조치를 실행할 때 의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수정안을 냈다. 수정안 통과는 의회는 EU 탈퇴 방안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을 갖게 됐고, 메이 총리는 EU와 협상을 끝내더라도 의회와 다시 씨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는 걸 뜻한다. 노동당 등 야당은 정부안이 의회 동의 없이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한을 각료들이 가지면 정부의 권한이 과도하게 확대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극적으로 1단계 협상을 타결시키고 이날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27개 회원국의 승인을 얻어 2단계로 진입하고자 했던 메이 총리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총리실 대변인은 “권한을 포함한 정부 법안이 필수적임에도 의회가 수정안을 통과시켜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브렉시트 협상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메이 총리가 이번 회의를 브렉시트 후 EU와 영국의 무역관계를 설정하는 협상을 앞당기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려고 했는데 어렵게 됐다”며 “EU 리더들은 어떤 협상을 하든 메이 총리가 런던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FP통신도 “EU 리더들이 이번 주 정상회의에서 1단계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것으로 예측돼 2단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 상황이었지만, 이번 표결로 그런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앞서 영국과 EU는 8일 6개월간 끌어온 브렉시트 1단계 협상을 마무리했다. 최대 쟁점인 ‘이혼 합의금’은 영국이 EU 측에 400억~500억유로를 수년에 걸쳐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아일랜드섬 국경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국이 자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해 EU를 탈퇴하더라도 국경 통과 시 통제를 강화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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