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블로거는 ‘162대 0’ 예상
랭킹 21위와 1위, 실력차는 현격
2피리어드 10분까지 2-1 리드도
현지 팬들도 대표팀 분투에 환호
*수문장 달튼 활약에 이변 연출
유효슈팅 56개 중 53개를 막아내
백지선 감독 등 평창서 선전 기대
‘공은 둥글다’는 말은 스포츠에서 자주 쓰인다. 언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궈냈고, 한국 야구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국가간의 실력 차가 워낙 큰 아이스하키는 이변을 허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세계선수권대회만 해도 6개 디비전으로 나눠 열리는데, 16개 팀으로 구성된 월드챔피언십(톱디비전)과 다음 단계인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다. 2부리그 승격 팀이 톱디비전에서 살아남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아이스하키 변방에 머물던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21위)는 세계 최강 팀들을 상대할 기회조차 없었다. 세계선수권뿐만 아니라 친선전도 철저히 실력에 따라 치른다. 캐나다(1위), 러시아(2위), 스웨덴(3위), 핀란드(4위), 미국(5위), 체코(6위) 등은 ‘그들만의 리그’를 운영하면서 한 수 아래 단계의 팀들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백지선호’는 14일(한국시간) 꿈에서 만날 법한 상대캐나다를 만났다. 비록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소속 선수들은 없었지만 25명 가운데 23명이 NHL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아이스하키 종주국 캐나다는 강력한 평창 올림픽 우승 후보다. 2011년 미국의 아이스하키 전문 블로거는 인터넷 포털 야후에 “한국과 캐나다가 붙으면 162-0으로 캐나다가 이길 것”이라며 두 팀 간의 현격한 실력 차를 꼬집기도 했다.
실제 경기 시작 전만 해도 ‘캐나다에 크게 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백지선(50)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상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대표팀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VTB 아이스 팰리스에서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 개막전에서 투지 넘치는 경기를 펼친 끝에 2-4로 캐나다에 석패했다. 비골 졌지만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선전이었다. 현지 러시아 팬들도 세계 최강 팀에 당당히 맞선 대표팀의 분투에 크게 환호했다.
대표팀은 2피리어드 10분이 경과할 때까지 2-1로 경기를 리드하고 종료 32초 전까지 한 점 차 승부를 펼치며 잘 싸웠다. 지난 시즌 아시아리그 최우수선수(MVP) 김상욱(29ㆍ안양 한라)이 2골을 터트렸고, 수문장 맷 달튼(31ㆍ안양 한라)은 소나기처럼 쏟아진 56개의 유효 슈팅 가운데 53개를 막아내는 신들린 선방을 펼쳤다.
경기 내용은 슈팅 수 57-10으로 캐나다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지만 ‘수호신’ 달튼이 든든하게 뒷문을 지킨 덕분에 끝까지 추격권에서 상대를 따라갈 수 있었다. 캐나다 CBC 방송은 56개 중 53개를 막아낸 달튼을 두고 ‘훌륭했다’라는 표현을 썼다. 또 스포르팅뉴스는 “1피리어드에 23개, 2피리어드 22개, 3피리어드 11개를 막은 달튼 덕분에 한국은 캐나다와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예상 밖 선전에 대표팀 분위기도 한껏 고무됐다. 백 감독은 “모스크바 원정에서 세계 1위 캐나다와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기회이자 환상적인 일”이라며 “달튼이 엄청난 선방을 했고, 두 차례 골 찬스에서 골을 넣었다. 다음엔 팀 전체적으로 나아진 경기를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달튼은 “(모국) 캐나다와 경기를 앞두고 대단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면서 “한국이 캐나다와 같은 최강 팀과 붙은 것은 처음인데, 점수만 놓고 보면 대단히 희망적이다. 이번 경기를 통해 최고 수준의 팀과 경쟁하려면 어떻게 준비 해야 할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김상욱은 “캐나다라고 특별히 부담을 느끼지 않고 똑 같은 선수 일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경기를 했다”며 “조직력을 더 가다듬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계속 소통을 한다면 올림픽에서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는 캐나다와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체코, 한국이 참가했다. 대표팀은 15일 오후 9시 핀란드와 대회 2차전을 치른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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