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지지자에 "이견 허용" 쓴소리
비난 쏟아지자 "집문 걸어 잠그고" 함구
건강한 비판 막으면 촛불ㆍ민주정신 역류
두 달 전 '이니 팬덤의 레드라인'이란 칼럼을 쓰고 엄청난 욕설 댓글에 시달렸다. 한때 여성비하 등 왜곡된 젠더 의식을 드러낸 탁현민 청와대 비서관의 경질을 청와대에 건의하겠다는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의 국회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글이었다. 요지는 문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이 정 장관의 언행을 '망동'이라고 비난하며 되레 그를 경질하라는 청원을 쏟아 내고 있는데, 이런 청원은 문 대통령에게 도움은커녕 되레 부담만 지우게 되니 팬덤도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심사를 긁은 듯, 짧은 글에 달린 수백여 댓글의 대다수는 앞뒤 없는 저급한 막말이었다.
이 일이 다시 생각난 것은 얼마 전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성북구청에서 ‘지방분권' 을 주제로 강연하던 중 질의응답 과정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해 거센 반발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안 지사는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왜 말이 많냐, 닥치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공론의 장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지지"라며 "그런 식으로는 정부를 지킬 수 없고, 우리 '이니'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페이스북 등 SNS와 기사 댓글에는 '적폐 매국노' '알맹이 없는 몽상가' 등의 극언이 빗발쳤고 대권 꿈 포기는 물론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글도 적잖았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연정론을 내세워 판세를 혼란스럽게 만든 안 지사가 적폐청산 국면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입바른 소리를 내는 것이 거슬렸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정치보복 운운하며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안 지사가 '자기 정치'만을 위해 딴 얘기를 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네거티브 공방이 한창이던 대선 후보 경선 때 "문 후보 진영의 비뚤어진 태도가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고 반격했던 안 지사는 이번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더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분명해 오해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지만, 벌꿀오소리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그들과 생산적 논쟁을 이어 갈 수 없다는 판단이 더 앞섰을 것이다.
안 지사의 속마음은 며칠 뒤 4월회 초청강연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를 말해 달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말하면 싸움을 붙이게 된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면 집에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하겠다"고 답했다. “때가 되면 하겠지만 지금은 같은 당의 같은 팀으로 문 대통령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힘을 모아드려야 한다"는 '모범답안'도 내놓았다. 큰 꿈을 꾼다면 문 대통령 지지층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는 언행은 삼가라는 주변의 충고가 많았던 것 같다.
대나무숲의 외침처럼 '문을 걸어 잠가야만' 그가 털어놓을 얘기는 뭘까. 노무현 정부의 의욕과 좌절을 생생히 지켜본 그는 70%대의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과 환호에 묻힌 문제나 진보정권을 이어 갈 방안을 누구보다 잘 짚어낼 사람이다. 그 대상은 한ㆍ중 사드 논란과 북핵 문제에서부터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개혁의 방향과 속도일 수 있고, '내로남불'과 '캠코더' 등의 딱지가 붙은 인사시스템체계의 개선이 될 수도 있다. 또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하는 정치력, 전리품을 요구하는 노동계 등 지지층을 다루는 지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입을 닫았다. 김관진을 석방한 법원에 '떼창 욕' 운운했던 민주당 중진의원마저 "서생 같은 훈시가 웬 말이냐"고 비아냥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사정이 이러니 요즘 학계조차 문 대통령의 공약이나 정책을 건드리는 기고나 토론회 참석 요청에 손사래를 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희정도 문을 걸어 잠가야 말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워 온 우리가 아닌가.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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