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있어?
테루오카 이쓰코 글, 스기우라 한모 그림, 김난주 옮김
밝은미래 발행·28쪽·1만2,000원
크리스마스는 어쩐지 겨울에 맞는 어린이날 같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고 꼬마전구들이 반짝이고 간간이 캐럴이 흘러나오면 아이들은 첫눈 맞은 강아지처럼 달뜬다. 초록, 빨강, 금빛, 은빛으로 꾸민 상점들, 부모 손에 매달려 재잘대는 아이들, 이리저리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한때는 아이였으나 더 이상 아이일 리 없는 이들도 슬그머니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천진난만했던 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하고 제 안에 꼭꼭 숨어 있던 아물지 않은 상처에 놀라기도 한다. 거리 곳곳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섰다. 휘황한 조명에 눈이 부시다.
“아빠,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어?” 아이가 옷을 벗다 말고 묻는다. “그럼, 있지.” 함께 목욕을 하려던 참이다. 아빠는 벌써 욕조에 몸을 담갔는데 아이들은 꼼지락꼼지락, 서두르는 법이 없다. “굴뚝이 없어도 와? 문이 잠겨 있어도 들어 와?” “그럼.” 다행히 어떻게 들어 오냐고 묻진 않는다. “아이들이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알아?” “왜 꼭 밤에 와?” 난이도가 높아졌다. 아이들이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아는 사람만 산타가 될 수 있다고, 감사 인사 듣기가 쑥스러워 밤에 몰래 오는 것 같다고, 아빠가 그럭저럭 괜찮은 대답을 내놓는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없대.” 누나는 만만치 않다. “왜 안 죽어? 옛날부터 있었잖아.” “어떻게 하룻밤에 전 세계를 다 돌 수 있어?” “그렇게 많은 선물을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불똥이 엄마한테도 튀었다. 도와줄 친구들을 부르겠지, 아주 열심히 저금을 했겠지, 기부금도 많을 거야… 두 아이가 번갈아 강속구를 날리는데, 기특한 이 집 부모는 당황하지 않고 종주먹을 들이대지도 않고 조곤조곤 잘도 받아넘긴다.
실감나는 대화 내용은 재기발랄한 그림으로 변신했다. 담백하고 기발하다. 아래쪽 자그마한 연보랏빛 색면엔 가느다란 펜으로 화자들을 오밀조밀 그려 넣었다. 좌우로 나뉘고 상하로 나뉜 공간, 네 장의 그림 속에서 엄마, 아빠와 아들, 딸, 다정한 네 식구가 목욕을 하고 이를 닦고 연하장을 쓰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제 각각의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설전을 벌인다.
두 아이가 입을 모아 결정타를 날린다. “왜 안 오는 집도 있어?” 말문이 막힌다. 아이들도 안다. 이 세상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지금 유리창 밖에 성냥팔이 소녀가 서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물거리는 부모에게 아이들이 쐐기를 박는다. “정말 있는 거 맞아?”
산타 할아버지는 왜 모든 집에 가지 않을까. 아이들이 기뻐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면서, 아이들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면서. 그나저나 산타 할아버지는 지금 얼마나 귀가 가려울까.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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