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잘하는 인문계생 유리 8번
국어 잘하는 자연계생 유리 4번
“현재 수능은 진로 선호와 반대로
좋아하는 과목이 당락 결정 못해”
현장 교사들도 개편 목소리 높아
“인문계를 선택한 학생들은 뛰어난 국어 실력을 갖고 있어도 수능에서 그만큼 인정을 못 받고, 자연계 학생이 수학을 아무리 잘 해도 국어로 당락이 결정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 되고 있어요.”
서울의 한 고3 담임 교사는 이렇게 푸념했다. 학생들의 진로 선호와는 반대로 대학수학능력평가에서 인문계는 수학이, 자연계는 국어가 진학을 좌우하는 상황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에 발표할 수능 개편안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3일 한국일보가 최근 10년의 수능 국어, 수학 가(자연계)ㆍ나(인문계) 영역의 표준점수 최고점을 비교한 결과 인문계는 수학이, 자연계는 국어가 주요 대학 진학의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한 연도가 이번 2018학년도 수능을 포함해 각각 8번, 4번이었다. 최근 5년간만 보면 각 3번, 4번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표준점수란 수험생 개인의 영역별 실제 점수(원점수)가 전체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해마다 다르다. 시험이 어려울수록 표준점수 최고점이 높다. 2009학년도 수능 시험의 경우 인문계생이 주로 치른 수학 나형은 아주 어렵게 출제돼 표준점수 최고점이 158점까지 치솟았지만 국어는 140점이었다.
상당수 대학은 각 영역 표준점수 합산치를 정시 전형의 기본 평가기준으로 삼고, 순위를 가리기 위해 소수점까지 계산한다. 수학이 더 어렵게 되면 수학보다 국어에 자신이 있어 인문계열을 택한 학생보다 수학에 집중한 학생이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는 것이다. 국어의 최고 표준점수가 수학 나형을 웃돌았던 2015, 2017학년도를 제외하면 최근 10년 중 8개년은 ‘수학 잘하는 인문계생’이 더 유리했던 셈이다. 올해 수능 역시 수학 나형의 최고표준점수(135점)와 국어의 점수(134점) 간 차이는 1점이지만 입시전문가들은 상당수 대학이 수학 영역에 높은 가중치를 두고 있는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연계의 경우도 최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데 2015~2018학년도 4년 동안 국어의 최고표준점수는 수학 가형보다 최소 4점에서 최대 9점이 더 높았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상대평가를 위해 도입한 표준점수 제도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라고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상위권 인문계는 대부분 국어를 잘하니 수학이, 자연계는 반대로 국어가 변별력 기준이 되는 것”이라며 “특성화된 실력을 키우고 평가하자는 고교 문ㆍ이과 구분 취지와는 분명히 어긋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수능 개편을 준비 중인 교육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의 수능 과목별 난이도 조절은 의도와 달리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내년 수능 절대평가 추진 방안을 비롯, 수능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문ㆍ이과 통합에 대한 요구도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여고의 한 교사는 “기본적인 교과를 이수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더 많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 전공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육과정 개편도 입시제도 개편와 함께 맞물려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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