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학자 프란스 드 발의 책 ‘공감의 시대’를 번역하다 보니 침팬지 같은 유인원뿐 아니라 쥐 같은 작은 동물들도 동료의 신음소리를 들으면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하나 깨달았습니다. 요즘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들 하는데, 공감은 이미 본능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공감 능력은 기르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겁니다. 저도 불쌍한 아이들 돕자는 프로그램 보면 같이 울어야 하는 데 그만 마음이 불편해져 채널을 돌려버리고 맙니다. 공감 본능이 무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3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만난 최재천(63)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강조한 포인트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직계 제자로 우리사회에 ‘통섭’ 바람을 불러왔던 최 교수는 막 ‘외도’를 끝낸 상태다.
최 교수는 이런저런 대내외적 감투를 한사코 피해왔다. 2013년, 우리 나이 환갑에야 충남 서천군에 문을 연 국립생태원의 원장직을 맡아 3년 2개월 동안 일했다. 참여정부 시절 ‘그런 기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제안하고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4대강 사업 벌였던 이명박정부가 끝나자 주변 생태전문가들은 생태원을 저렇게 내버려 둘 것이냐고 닦달해댔다. 초대 생태원장 공모에 지원서를 냈다. 원장에게 부여된 가장 큰 임무는 ‘한 해 방문객 30만명’이었다. 재직 기간 동안 매년 방문객 100만명을 넘겼다. 나름대로 성공한 경영자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는 초보 경영자가 500여명의 직원들과 부대낀 기록이다. 책 쓸 생각은 없었다. 평생 공부한 생태학이라면 괜찮다. 경영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3년 남짓 했을 뿐이다. 쟁쟁한 경영자들의 쟁쟁한 경영기록들이 넘쳐나는데 무슨 말을 더 보태랴 싶었다. “경영과 무관해도, 피하고 싶어도 언젠가 한번은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야 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한번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어요.”
박태준(1927~2011) 포철 사장을 따라 육군본부 중령에서 포철 인사과장으로 변신했던 아버지에게 조직과 인사를 배웠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게 빌고 빌었던 얘기, 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그토록 경멸했던 회식문화에 온 몸을 던졌던 얘기 등이 빼곡하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최 교수는 ‘경영 십계명’으로 정리했다.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집단 속으로 들어가기)하라, 소통은 삶의 업보다, 이를 악물고 듣는다,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같은 내용들이다.
그의 십계명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결국 ‘호모 심비우스(Homo Symbous)’, 즉 ‘공생하는 인간’이다. 최 교수가 2003년부터 제시한 개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야 가장 건강하다.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감한다. 최 교수가 공감을 기르기보다 무뎌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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