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위장 업체 거래망 추적
돈줄 차단… 대북 제재 효과
미국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에 착수한 이후 북한 관련 기업들의 자금을 8,000만 달러 이상 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이 다양한 해외 위장 업체들을 통해 미 금융시스템의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 효과도 적잖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민간연구기관인 고등방위연구센터(C4ADS)와 세종연구소는 12일(현지시간)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법무부가 지난해 9월 이후 단둥훙샹실업발전, 밍징국제무역 등 대북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들으로부터 몰수한 자금이 8,436만 4,544 달러(약 92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05년 북한을 크게 당혹하게 만들었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사건 당시 동결됐던 북한 자금 2,400만 달러의 3배가 넘는 규모이다.
보고서는 북한이 대북 제재를 피해 다양한 해외 위장 업체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무역 및 외환 거래를 하고 있지만 이는 동시에 북한 정권의 취약점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해외 위장 업체들의 거래망을 추적하면 북한 정권 유지에 핵심인 해외 돈줄을 차단, 북한 정권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북한이 홍콩에 기반한 위장업체를 통해 미국 금융시스템을 이용해 온 사실을 추가 적발했다. C4ADS는 북한 정찰총국이 운영하는 것으로 지목된 말레이시아 통신장비 업체 ‘글로콤’의 거래 내역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홍콩에 기반을 둔 션강무역투자회사(shengang Trade&Investmentㆍ深光貿易投資有限公司)가 2013년 1월 글로콤의 거래업체에 구매 대금을 달러로 지불한 기록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달러 지불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에 개설된 대리계좌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유엔 전문가 패널은 올 2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글로콤이 북한산 군사용 통신장비와 재래식 무기를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 판매하려다 적발됐다며 이 회사가 북한 정찰총국이 운영하는 팬시스템의 위장 회사라고 지목한 바 있다.
아울러 러시아 세관기록에 따르면 션강무역투자회사는 올해 3월 289톤의 러시아 수산물을 북한으로 수송하는 거래에도 관여했다. 이 수산물은 북한의 고려청송무역회사가 러시아의 어업 업체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션강무역투자회사가 북한 대동신용은행(DCB)의 위장 회사로, 북한 해외 위장 업체들의 외환 결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의 해외 위장 업체들은 서로 연계돼 있어 한 마디를 추적하면 전체 네트워크를 적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북한의 취약점은 경제이며 우리의 레버리지는 금융이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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