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쪽에서 옷에 책정하는 가격은 예전부터 아주 제멋대로인 것 같다. 특히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적당히 잘 만들고, 알맞게 트렌드한 중간 가격대 브랜드가 설 자리가 애매해졌다. 패스트 패션 매장에서 낮은 가격의 제품을 구입해 입든가 아니면 아예 비싼 걸로 사든가 하는 식으로 양극화가 되다 보니, 낮은 쪽에서는 가격을 더 내릴 방법을 찾고, 높은 쪽에서는 가격을 더 올릴 방법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유니클로에서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9만원에 살 수 있는가 하면 구찌의 면 양말은 이보다 더 비싸다. H&M에서 울 코트를 15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얼마 전 오프-화이트에서 나온 3개들이 언더웨어용 티셔츠 세트는 50만원이 넘기도 했다. 이렇듯 제품의 모습만으로 가격을 어림짐작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소재의 차이, 또는 오랜 시간 종사한 장인이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구별점이자 높은 가격의 이유가 되었지만, 그런 부분의 차이가 크게 의미 없는 제품들이 많아졌다. 요즘은 스트리트웨어가 대세가 되면서 어차피 공장 생산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따져 보면 소재도 더 좋은 걸 쓰고,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직원들이 만들고,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비용을 아끼지 않은 선명한 프린트로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브랜드 이름값과 이미지에의 의존도가 더 커진 상황이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격이 쉽게 화제가 되긴 하지만, 사실 비싼 가격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건 아니다. 어차피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도 아니고 대체재도 잔뜩 있다. 개인의 만족이나 사교적 효용, 연예인 등의 직업상 효과 등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100만원짜리 티셔츠를 구입했을 테고, 그렇다면 된 거다. 그런 부분이 필요 없다면 안 사면 그만이다. 비싼 티셔츠의 존재가 타인의 안위를 딱히 위협할 일도 없다.
위화감 조성 같은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치자면 자동차, 집, 휴대폰 등 모든 제품이 다 해당된다.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재화가 있다는 것, 수요를 생각하며 새로운 걸 만들어 낸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큰 장점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러므로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건 가격이 낮은 쪽이다.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선 면이 필요하고 가공을 하고, 염색을 하고, 천을 잘라 연결하고, 부자재를 붙이고, 완성된 제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고, 판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있다.
요새는 옷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보다 낮아졌고 결국 인건비 등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비슷한 제품과 비교했을 때 이상하게 낮은 가격이 붙어 있다면 이 과정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대개 인건비, 특히 위험 요소의 전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낮은 가격으로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 패스트 패션 회사에 많은 비정부기구(NGO)가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다. 그래서 H&M이나 유니클로 등은 제품을 생산하는 현지 정보에 대해 매년 공개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하고 현지 생산 공장 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현지 공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인터넷 사이트나 보다 전향적 투명성을 정체성으로 삼은 브랜드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윤리적 제조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국의 에버레인 같은 브랜드는 홈페이지에서 각 제품을 눌러 보면 원가와 유통 비용, 노동자 임금, 생산 공장과 그곳의 환경 등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결국 옷을 누가 어디서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가 확실히 공개될수록 환경이 개선되고 임금이 정당하게 지급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그런 것들이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란 그저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임금에 열악한 환경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만든 옷을 입고 싶지 않은 한, 그런 기본적 비용이 지불되고 난 다음에야 최저가에 의미가 있는 법이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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