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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베네딕트 앤더슨 (12월 13일)

입력
2017.12.1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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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베네딕트 앤더슨. 코넬대.
1991년의 베네딕트 앤더슨. 코넬대.

아일랜드 출신 정치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8.26~2015.12.13)은 ‘민족주의의 기원과 확산’이라는 부제를 단 1983년 저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민족이란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로 정의했다. 그가 말한 ‘상상’은 허구나 허위, 날조의 의미가 아니라 ‘생각’ 혹은 ‘상정(想定)’의 의미다. 공동체를 상상하는 방식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삶의 조건에 영향을 받으며 변천해 왔고, 근대적 의미의 민족과 민족주의 역시 그 패턴의 지배를 받는다는 거였다.

앤더슨은 중세의 노을 속에 빛을 잃은 세 가지 관념에 주목했다. 종교적 질서관념과 왕권신수설 같은 세속적 질서관념, 그리고 진리의 유일 창구로 군림하던 라틴어 등 특정 언어의 특권. 숙명의 밧줄과 구원, 낙원의 희망을 잃어버린 인류가 대체제로 택한 게, 앤더슨에 따르면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이고 민족주의였다.

특이하게도 그는 민족주의의 기원을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식민지 정착민 공동체에서 발견했고, 근본동력을 신문 같은 인쇄자본주의에서 찾았다. 즉 단일한 소통 영역이 창출됐고, 혈통이 아닌 지역적 기반의 일체감이 형성됐다는 것. 서유럽도 기층언어 중심의 ‘언어민족주의’가 태동했다. 중동부 유럽과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반식민주의에 뿌리를 댄 ‘관주도(관제)’ 민족주의였다. 한마디로 민족과 민족주의는 한국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입에 달고 살듯이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통해 존재해 온 영속적ㆍ자연적 실체가 아니라 구성된(상상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거였다. 좌파 사학자 에릭 홉스봄 등이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을 낸 것도 1983년이었다. 그들의 견해는 이어 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기류 안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앤더슨 등의 근대론적 견해에 대해 본질주의자들은, 중세와 그 이전의 민족 담론들을 근거로, 민족주의를 여전히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근거한 실체로 판단한다. 좌파 이론가들은 민족주의-자본주의의 연관성을 인쇄기술 수준으로 왜소화한 점을 아쉬워한다. 즉 경제활동 단위영역의 형성, 경제적 네트워크의 언어적 경계, 절대왕정의 붕괴와 근대부르주아 국가의 성립, 종교개혁 이후 종교의 지역적 분화 등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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