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발발 76주년 기념
눈가리개 한 여성 동상 제막식
필리핀에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일본이 향후 양국 관계를 해칠 것이라며 즉각 반발하는 등 양국 사이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일본 NHK와 중국 신화통신,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필리핀 국립역사위원회(NHCP)는 민간단체 투라이재단과 함께 지난 8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시 로하스대로 변의 한 산책로에서 3m 높이의 위안부 여성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NHCP는 태평양 전쟁 발발 76주년을 기념해 위안부 동상을 세웠다고 밝혔다.
동상은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이 두 눈을 가린 채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동상 아래 음각 비석에는 ‘1942~1945년 일본 통치하에 학대 받은 모든 필리핀 여성의 기억’이라고 새겨졌다. 로하스대로를 사이에 두고 일본 대사관 (파사이시)과는 약 3㎞ 떨어졌으며, 눈가리개를 한 여성의 시선은 시내 방향으로 처리됐다.
레네 에스칼란테 NHCP 위원장은 “1,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일본군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라며 “동상 설립은 다음 세대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NHCP와 동상을 함께 제작한 투라이재단은 2013년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에 의한 잔학 행위를 고발하는 사진전을 개최했다.
필리핀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1956년 필리핀-일본 보상협정 체결로 일본에 대한 일체의 법적 청구권이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다만, 위안부 피해자의 개별적 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필리핀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양국 과거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양국간 협력 발전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며 “필리핀 현지 언론들이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 등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마닐라 위안부 동상 건립에 대해 “해외에서 위안부 동상이 설치되는 것은 일본의 입장과 상충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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