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난 9월 여성 운전을 사상 처음으로 허용한 데 이어 10일(현지시간) 상업 영화관 운영을 35년여 만에 허락하면서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날부터 신규 상업 영화관 운영을 위한 영업허가 발급에 나섰으며, 내년 3월 첫 영화관이 개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와드 알라와드 문화정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2018년 초부터 상업 영화관이 문을 열게 된다”라며 “영화관 허용은 35년도 더 된 일”이라고 말했다. 알라와드 장관은 이어 “상업 영화관 허용은 사우디의 문화 및 경제 발전의 분수령을 뜻한다”고 평가했다. 사우디 정부는 영화관 개장으로 2030년까지 3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되고, 약 240억달러 규모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1979년 이슬람 사상을 강화하는 정치적 움직임 속에 사우디의 상업 영화관은 1980년대 초반 일제히 폐쇄됐다. 때문에 이후 사우디 국민은 위성방송 등으로 가정에서 영화를 보거나, 이웃 나라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의 상영관을 찾아 영화를 봐왔다. 사우디 내 강경 보수파들은 영화와 음악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보는데, 올해 1월만 해도 사우디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압둘아지즈 알셰이크는 “영화와 음악 콘서트는 악마에게 문을 여는 일”이라며 경고했다.
이같은 획기적인 개혁은 사우디 실세인 32세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고 있다. 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려면 사우디가 종교적으로 금기시했던 대중문화 등 소프트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추진하는 ‘비전 2030’에 따르면 사우디에는 2030년까지 300곳의 영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AFP통신은 “상업 영화관 허용은 석유시대 이후를 대비한 대대적인 사회 개혁 계획의 일환”이라며 “사우디 왕가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영화관이 허용돼도 좌석이나 상영관을 남녀로 구분할 가능성이 있지만, 최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야니의 콘서트에서 가족 입장객의 남녀 혼석을 허용한 만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