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부인 백악관 입장과 배치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폭로 이래 미국 사회에서 이어지는 여성의 성추행 폭로를 지지하며, 설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상이라도 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행 의혹을 완전 부정하고 있는 백악관의 입장과 배치돼 주목된다.
헤일리 대사는 10일(현지시간)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 진행자 존 디커슨이 성추행 폭로로 앨 프랭컨 민주당 상원의원 등 정치인 3명이 연방의회에서 물러난 사건에 대해 의견을 묻자 “(폭로) 여성들의 힘과 용기가 자랑스럽다”라며 “정치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양심을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성추행 의혹이 대통령 당선으로 해결된 문제(settled issue)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도 헤일리 대사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알지만, 누구에게나 성폭력 피해를 입었거나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은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라고 답했다.
이는 백악관의 입장과 배치된다. 올해 와인스틴 폭로 이후 ‘미투(me too)’ 운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성폭력에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의 주장이 언론에 재조명되자 백악관은 “이들 주장은 모두 거짓이며, 의혹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된 만큼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간 헤일리 대사는 유엔에서 ‘트럼프 일방주의’의 대외창구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강경파로 비춰졌지만 공화당 주류로부터도 지지를 얻고 있다. 애초에 헤일리 대사는 유엔대사 발탁 전까지만 해도 공화당내 대선 경선에서 트럼프 지지를 거부한 대표 반트럼프 인사였다. 또 이날 헤일리 대사를 집중 분석한 잡지 뉴욕매거진은 “헤일리는 유엔대사로서 트럼프와 정면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성차별 문제나 극우주의ㆍ인도주의 관련 의제에는 트럼프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감시망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에서 조심스레 자신의 야망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시위와 폭력사태가 발생했을 때 헤일리 대사는 “증오가 낳는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트윗을 작성해 극우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자신의 직원들에게 “증오를 내뱉으며 행진하는 이들은 소수이지만 시끄럽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비판해야 한다”라고 적은 메일을 발송했다. 또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헤일리 대사는 미국이 유엔 이주민협약 탈퇴를 결정할 때 트럼프 내각에서 유일하게 반대하며 “잔류해 협약을 고치는 것이 낫다”라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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