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만 느껴졌던 동해 바다가 한결 가까워졌다. 서울과 강릉을 2시간 안에 주파하는 경강선 KTX가 22일 개통하기 때문이다. 기존 무궁화 열차로는 6시간, 자가용을 이용해도 3시간이 넘게 걸리던 길이었다. 지난달 23일 경강선 KTX 시운전 열차에 탑승했다.
강릉까지 2시간…서해보다 가깝다
평창동계올림픽 로고와 공식 마스코트로 외관을 장식한 열차가 서울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강릉역까지 예상 소요시간은 114분, 최고속도 250km로 달린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 인천ㆍ경기지역 서해안으로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강선 KTX는 22일 공식 개통 후 주중 18회, 주말 26회 운행한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횟수를 늘려 운행한다.
오전 9시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청량리, 상봉, 만종, 횡성, 진부역에 정차한 후 10시54분 강릉역에 도착했다. 서울을 빠져나가 한적한 농촌 들판을 달리던 열차는 만종역을 지난 후부터 계속해서 터널을 통과한다. 빠른 만큼 놓치는 풍경은 아쉽다. 터널과 터널 사이로 강원도의 산악이 휙휙 지나가고, 30여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야 풍경이 탁 트인다. 곧 강릉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벌써? 차가운 바다 내음이 역까지 스미는 듯했다. 큰맘 먹고 나서야 했던 동해 여행길이 서해만큼이나 가까웠다.
#강릉 겨울바다1. 정동진 바다열차
강릉역에서 내려 겨울 바다 여행의 성지, 정동진으로 향했다. 강릉역과 정동진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한결 편리하다. 소요시간은 약 30분. 199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 2000년대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지금 정동진은 많은 사람들이 바다열차를 타기 위해 찾는다. 2007년 첫 운행을 시작해 현재까지 약 130만명이 이용했다.
정동진~동해~삼척을 잇는 바다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56km를 달린다. 넓은 창문으로 시리게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를 관람할 수 있다. 일반석뿐만 아니라 식탁처럼 꾸민 가족석, 둘만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프로포즈석 등 특별한 추억을 위한 좌석도 마련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드넓은 바다 풍경을 마주한다. 좌석은 극장처럼 편안하고, 넓은 창은 스크린이다. 시원하게 파도가 일렁이는 겨울 바다가 금방이라도 열차 안으로 밀려들 듯하다. 바다 풍경뿐 아니라 추암역 촛대바위, 함정전시관의 대형 전투함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바다열차는 경치가 좋은 구간을 지날 때마다 속도를 늦추고, 기관사는 바다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릉 겨울바다2,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눈으로 보는 바다를 경험했다면 두 발로 걷는 바닷길에 도전해보자. 정동진에서 심곡항에 이르는 2.9km 해안탐방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바다를 향해 펼쳐진 해안선 지형이 부채 모양과 비슷해 붙인 이름이다. 바다와 걷는 재미뿐만 아니라 2,300만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로 한반도 지형의 역사도 볼 수 있다.
썬크루즈 주차장 입구에서 출발해 좁고 깊은 탐방로를 10분 정도 내려가면 티끌 하나 없는 푸른 수평선이 펼쳐진다. 꿈틀대는 바다와 시원한 파도 소리가 눈과 귀를 씻어준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상쾌한 바다 내음이 오감을 자극한다. 열차 안에서 바라본 것과는 전혀 다른, 살아 움직이는 바다다.
바다부채길은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탐방로 초입은 해안 절벽에 가깝지만, 본격적인 코스에 진입하면 발 아래로 파도가 넘실댄다. 큰 파도가 날카로운 바위에 부서질 때면 솟구치는 포말 입자가 얼굴에 닿을 정도다. 탐방로에 발을 붙이고도 바다 위를 걷는 듯 아찔한 전율이 느껴진다.
#강릉 겨울바다3. 주문진 소돌아들바위공원 해돋이
강릉의 대표 해돋이 명소는 누가 뭐래도 정동진이지만 동해의 일출은 어디서나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주문진 소돌해변 남쪽에 위치한 소돌아들바위공원은 지형이 바다 쪽으로 볼록 솟아 있고, 높게 솟은 전망대가 있어 지역의 해돋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해가 뜨기 전 공원에 나가 자리를 잡았다. 깨끗한 수평선 끝에 작은 구름이 약간 걸려 있다.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붉은 기운이 멀리 바다 끝에서 스멀거린다. 동네 주민들도 간만에 맑은 날씨라며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공원에 나왔다. 곧 엷은 구름을 뚫고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불기운의 움직임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빠르고 뚜렷하다.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 갈매기도 붉은빛으로 물들고, 고기잡이 배도 때맞춰 넓은 바다로 향한다. 붉은 아침이다.
일출 쇼가 끝난 후 공원을 둘러보니 바람과 파도가 깎아놓은 독특한 바위들이 곳곳에 모여 있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의 붉은 기운이 스며 기이한 형상이 도드라져 보인다. 공원의 명물인 소돌아들바위는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1억5,000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지상에 솟아 오른 바위다. 한 노부부가 그 앞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후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강릉=김창선 PD(디지털콘텐츠국 영상팀) changsun9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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