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의 기쁨] 어릴적 배고픔 못잊는 60대 기초수급자 “아프리카 아이들 도와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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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기쁨] 어릴적 배고픔 못잊는 60대 기초수급자 “아프리카 아이들 도와 흐뭇”

입력
2017.12.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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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려운 이들이 기부 더 잘해

알바ㆍ비정규직 신분 고강훈씨

3년째 매달 2만5000원 기부

“작은것 나누며 내 존재감 찾아”

#2

두 젊은 의사 ‘기부 라이벌’

광주 오태영ㆍ영광 정선완 원장

대학 때부터 해외서 진료봉사

“나누지 않으면 부에 익숙해져”

#3

기부 통해 사회적 이슈 확산

가습기살균제 피해모금 소재원씨

학생 이름으로 기부 여보은 교사

온라인 사회공헌 플랫폼에 참여

서울 노원구에 사는 기부순(61)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이석증으로 걷는 게 쉽지 않고 특히 오랜 시간 움직이는 것은 더욱 힘들다. 기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88)와 함께 살고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본인 몸이 불편한데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씨는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코리아에 매달 1만5,000원을 기부한다. “마음이 흐뭇해요. 제가 기부한 돈으로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끼니를 잇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슴이 뭉클하죠.”

기초생활수급자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내놓는 이유는 기씨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배고픔의 기억 때문이다. 건강보험에 가입이 안 돼 있어 남의 건강보험카드로 병원을 가기도 했다. 그 어려운 시절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배를 곯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려운 이들이 더 잘 기부하는 이유

기부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기씨처럼 오히려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다른 이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한다. 이렇게 해서 기부란 넉넉한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눠진다는 의미가 된다.

고강훈씨는 몇달째 일자리가 없을 때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부는 쉬지 않았다고 한다. 컨선월드와이드코리아 제공

고강훈(30)씨는 201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심각한 근육 불균형으로 정상 생활이 어려워 2년 가까이 요양을 했다. 2015년부터야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줄곧 다달이 2만5,000원을 기부하고 있다. 하지만 3년 가까이 기부를 해 오는 동안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불규칙적으로 일하다 보니 월 100만원을 벌 때도 있었고 올해 초에는 4개월 동안 일을 못한 적도 있습니다. 서울서 자취방 월세를 내가며 100만원으로는 살기가 빠듯하죠. 어떤 때는 기부를 계속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 얼마의 돈이 없어 생명을 잃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멈추지 못하겠더라구요.”

고씨는 기부 이후 사람을 대하는 자세,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제 아주 작은 것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소득층, 혼자 사는 노인 등 어렵고 외로운 이들이 기부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 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코리아 대표는 “나도 배고프지만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삶을 쪼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움 겪었기에) 사람이 귀한 걸 뼈저리게 느끼는 겁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셈이죠.”

광주 학문외과 오태영(왼쪽) 원장은 지금 자신의 위치는 혼자 노력만이 아닌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어 굿네이버스 더네이버스 클럽에 가입했다. 굿네이버스 제공

기부로 경쟁하는 두 젊은 의사

광주 학문외과 오태영(40) 원장과 전남 영광 기독치과 정선완(35) 원장은 ‘기부 라이벌’이다. 전공은 다르지만 개업의라는 비슷한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기부를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경쟁한다.

오 원장은 지난 7월 굿네이버스의 더네이버스클럽에 가입했다. 연간 1,000만원 이상 후원하는 회원 중 특별한 나눔활동으로 기부문화 확산을 주도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정 원장은 4년 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남 영광지회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 내 어려운 가정환경의 어린이를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고 실행에 옮긴다. 두 사람 각각 아내와 두 자녀 모두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기부가족이다.

4년 전 먼저 알게 된 아내들이 “당신 같은 동네 아저씨 또 있으니 만나보라”고 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기부, 봉사에 대한 공통점이 너무 많아 서로 놀랐다. 대학시절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진료 봉사를 꾸준히 해왔고, 지인들에게 열심히 기부를 권한 것도 같았다. 심지어 같은 날 광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같은 비행기로 같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전남 영광 기독치과 정선완(오른쪽) 원장은 환자를 치료해 버는 단 1원이라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남지부 영광지회 사무국장을 맡아 기부 프로그램 만들기까지 나서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기부에 빠져 든 계기도 비슷하다. “의사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존경 받는 위치에 있죠. 그게 순전히 우리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오 원장) “돈을 벌면서부터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했고 단 1원이라도 나눠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죠. 나누지 않으면 부에 익숙해지고 돈에 무감각해지니까요.”(정 원장)

오 원장은 2015년 기독교음악(CCM) 음반 ‘TGI Bible’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 500만원으로 방글라데시의 한 마을 주민이 함께 쓸 수 있는 우물, 빨래터, 어린이 수영장을 만들어 준 일이 가장 기뻤다고 한다. 정 원장은 새 직원을 뽑을 때마다 ‘기부 참여’를 제안한다. “직원이 2만원을 기부하면 제가 2만원을 보태 기부합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나중엔 열심히 참여하는 걸 보고 저도 기뻤죠. 한 직원은 개원 때부터 7년 동안 기부하고 있어요.”

오태영(왼쪽), 정선완 두 사람이 지난 여름 몽골로 진료 봉사를 함께 떠났을 때 모습. 두 사람은 기부에 대한 고민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기부 형제이자 라이벌이다. 오태영 원장 제공

기부를 통한 이슈의 확산

최근 새로이 등장한 기부 트렌드는 구체적인 이슈에 집중해 기부와 이슈 확산을 함께 이루는 것이다. 영화 ‘터널’의 원작 ‘터널-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를 쓴 소설가 소재원(33)씨는 지난해 4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 같이가치 위드 카카오(with Kakao)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함을 개설했다. 지난해 2월 태어난 아들 소명(2)군의 백일과 돌을 맞은 시기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면 이 문제는 부각되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저와 명이도 가습기살균제를 썼을지 모르죠. 명이를 지켜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이에게도 이런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명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습기살균제 이슈에 공감했던 그는 이 문제를 다룬 작품 ‘균’을 썼고 아들이 생긴 이후엔 기부활동과 함께 피해자 모임이나 행사에 명이를 데려가곤 한다.

소설가 소재원(오른쪽)씨는 아들의 백일과 돌을 맞아 카카오의 같이가치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함을 개설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기부에 나섰다. 소재원씨 제공

이슈를 제기하고 기부에 동참하는 이런 트렌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보급과 함께 확산되고 있다. 그 동안은 특정 비영리단체에게만 일상적 모금을 허용했지만 이런 경로를 통해 PC나 스마트폰으로 500~1,000원씩 소액 기부가 쉬워졌고, ‘응원’ 버튼만 눌러도 카카오가 100원을 대신 기부함으로써 이슈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SNS 기부는 젊은 층 중심이다. 카카오가 같이가치의 전신인 다음희망모금을 포함해 지난 10년 동안 기부자 약 1,500만명(약 170억원)을 분석한 결과, 20대가 약 40%를 차지했다.

온라인으로 더 쉬워진 기부

6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여보은(30)씨는 지난해부터 다달이 생일을 맞은 학생들 이름으로 같이가치 기부를 하고 있다. 2년 동안 아프리카의 여자 어린이를 후원했던 여씨가 학생들에게 기부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기부라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겐 프로젝트로 짧은 기간 진행하는 기부 프로그램이 제격”이라는 것. 부모에게 알리고 생일 맞은 학생들과 상의해 기부 프로젝트를 정하는데, 자연재해 때문에 고통 받는 다른 나라 또래 어린이, 국내 복지관 어린이, 수술이 필요한 고양이 등 그 대상은 매번 다르다.

경남의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여보은(뒷줄 오른쪽)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부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지난해부터 생일을 맞는 학생들 이름으로 카카오같이가치에 기부를 하고 있다. 여보은씨 제공

여씨는 학생들 이름으로 한 달에 1만원 정도를 기부하고 매달 마지막 수업 날 생일파티 때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카카오가 보내준 결과를 보면서 얘기를 나눈다. “처음엔 ‘그 돈 가지고 내가 더 잘 쓸 수 있는데 굳이 왜 남을 도와요’하며 시큰둥해 하던 아이들도 수술이 잘 됐다거나 하면 까르르 웃으며 좋아해요. 자기가 직접 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조금씩 돈을 모아 누군가를 돕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부모님도 응원과 격려를 많이 보내주시죠.”

같이가치의 기부금과 기부 참여자는 2015년 약 23억5,000만원, 약 111만명에서 2016년 약 29억3,000만원, 약 348만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연말까지 약 41억2,000만원, 약 78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네이버의 해피빈 기부 프로젝트 기부액도 2014년 약 29억7,000만원에서 2015년 약 35억7,000만원, 2016년 약 42억4,000여 만원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홍은택 카카오 소셜임팩트 총괄 수석부사장은 “누구나 쉽게 모금을 제안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기부의 일상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은택 카카오 소셜임팩트 총괄수석부사장이 같이가치의 성장은 기부의 일상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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