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9시 출근해 오후5시 퇴근
기존 임금 유지ㆍ인상 체계 그대로
“선진 문화로 생산성 향상 기대”
신세계그룹이 내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8일 밝혔다. 근로시간이 단축되지만, 임금은 그대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파격 실험인 주 35시간 근무제는 국내 대기업 중에선 최초로 도입되는 만큼 유통업계는 물론 국내 기업 문화 전반에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주 35시간 근무제에 따라 신세계 모든 임직원은 하루 7시간 근무하게 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 to 5제’가 시행돼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업무 특성에 따라 ‘8 to 4’ ‘10 to 6’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일선 매장도 근무 일정을 조정해 전 직원 근로시간을 1시간씩 단축하기로 했다.
국내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지난 7월 월 2회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를 비롯해 일부 벤처기업들이 근무시간을 줄여 운영하고 있지만 재계 10위권인 대기업이 일괄적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건 초유의 시도다.
“임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해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일할 때는 더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신세계는 설명했다.
근로시간은 단축하면서도 기존 임금은 그대로 유지된다.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임금인상도 진행할 예정이다.
신세계는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되는 만큼 선진 근무문화 구축을 통해 업무 생산성을 향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줄어든 시간만큼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근무에 집중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이마트 등은 문 닫는 시간이 빨라진다. 자정까지 운영되던 이마트는 한 시간 당겨진 오후 11시 문을 닫는다. 백화점의 경우 직원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일부 점포는 폐점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신세계의 근무시간 단축에 대해 다른 대기업들은 파격적인 조치라며 놀라워하면서도 이를 자사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성급히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의 생산성 향상이 뒤따르지 못할 경우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신세계의 주 35시간 근무제의 성과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과거 삼성이 시도했던 ‘7ㆍ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퇴근 시간만 정해져 있지 실제 업무가 제시간에 끝나진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박사의 경우 2주에 한 주는 4일 근무로 바꿨다가 고객 응대 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며 4주에 한 주 4일 근무로 바꾸기도 했다. 일부에선 문재인 정부의 코드 맞추기 성격이 짙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신세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은 2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해온 것으로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쳤다”며 “장시간 근로, 과로 사회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근로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국회는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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