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한국 축구 위기, 바라만 볼 수 없었다”
축구협회 본부장 수락 이유 밝혀
“정장 입은 모습이 오랜만이다”는 안부 인사에 박지성(36)은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며 싱긋 웃었다.
박지성은 8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호텔 캐슬에서 ‘따뜻한 사랑의 나눔 2017 재능학생 후원금 전달식’을 열고 축구는 물론 농구, 바둑, 빙상, 음악, 학업 등의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준 23명의 학생에게 후원증서와 후원금(100만원)을 전달했다. 2012년부터 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이 자리에 참석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중요한 건 여러분의 꿈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며 꿈에 다가가고 그 꿈을 이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달라”고 인사말을 했다.
박지성은 최근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에 선임됐다. 자신이 설립한 JS파운데이션 이사장, 친정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앰버서더, 아시아축구연맹(AFC) 사회공헌분과위원, 국제축구평의회(IFAB) 자문위원에 이어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다. 후원금 전달식 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사장은 재단을 운영하기 위한 타이틀일 뿐 축구협회 임무가 훨씬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2014년 은퇴 후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는 박 본부장은 여러 차례 축구협회로부터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르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뿌리칠 수 없었다. 그는 “한국 축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위기를 바라만 보는 게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한국 축구의 근간이 될 유소년 분야라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선수시절부터 유소년 육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2010년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센터를 건립해 이듬해부터 1년마다 꾸준히 유소년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의 대학원 석사논문도 주제도 ‘한국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한 방향 제시’였다. 박 본부장은 “내가 언제까지 이 직책을 유지할지 알 수 없지만 구조를 잘 갖추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박 본부장은 당분간 영국에서 머문다. 알렉스 퍼거슨(76) 전 맨유 감독, 데이비드 길(60) 유럽축구연맹(UEFA) 이사(전 맨유 사장) 등의 조언을 들으며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 특정 유럽 구단에 몸담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상근으로 축구협회 본부장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그는 “유럽에서 더 많은 행정 일을 배울 거다. 이미 축구협회와 협의된 부분”이라며 “내가 직접 한국의 유소년 현장을 다닐 수 없기 때문에 나와 축구협회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할 외국인 인사가 올 것이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7일 정몽규(55) 축구협회장을 만나 외국인 인사 영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행사를 참관하고 돌아온 그는 “우리에게 편한 조는 없다. 조 편성이 ‘좋다 안 좋다’를 말하는 것 자체도 한국 축구의 어려운 현실에서 마땅한 대답이 아니다”며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팬들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 선수들은 물론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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