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 기증자ㆍ이식자 교류 금지
기증자 유족 “안부라도 나누면
선택한 보람 느끼고 위로 될 것”
반대 측 “경제보상 요구 등 우려”
장부순(74)씨의 아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30대 초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던 아들은 밤새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2011년 1월 과로로 뇌출혈이 발생한 아들은 뇌사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장씨는 아들의 장기를 4명에게 기증했다.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얼마를 받고 아들의 장기를 판 거냐” “당신은 엄마도 아니다” 등의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기기증자 유가족 예우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씨는 “아들을 잃은 아픔에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상처까지 감당하기 힘든 나날들이었다”며 “그때 가장 간절했던 것은 ‘잘했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특히 “유가족에게 필요한 진정한 예우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와 격려”라며 “이식자들과 서신교환이라도 이뤄지면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뇌사 가족의 장기를 기증한 유가족들이 어렵게 한 자리에 모였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이식자들과 최소한의 서신교환 허용 등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2002년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7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박상렬(69)씨는 “바라는 건 그저 이식인이 우리 가족의 장기를 통해 다시 힘차게 살고 있다는 안부 한 마디”라며 “그 짧은 인사를 무려 14년이나 기다려왔다”고 흐느꼈다. 현재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 유지)’는 장기기증자와 이식자들의 교류를 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장기 기증으로 인한 아무런 보람은 없이 외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니 장기기증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뇌사자의 절반 가량이 장기기증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뇌사자 4,000명 중에 기증을 한 이들은 500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2002년 법 시행 후 작년 말까지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4,172명이다.
실제 미국, 영국 등에서는 서신교류가 허용된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이선경(46)씨는 “이식 얼마 뒤 딸 덕에 평소 꿈 꾸었던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했다는 편지를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유가족과 이식자 간 교류를 허용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아무리 기관에서 관리를 한다 해도 일단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이식자들이 교류를 하게 되면, 경제적 답례를 요구하는 등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장기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이식자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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