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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사 운영 약국에 약 못팔게 한 약사단체 ‘갑질’ 인정

입력
2017.12.08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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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약 납품 계속 땐 실력행사”

제약사 압박 거대 약사단체에

공정위, 작년 과징금ㆍ시정명령

대법 “거래 자유ㆍ시장경쟁 제약”

‘약준모’의 취소소송 청구 기각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하 한약국)엔 일반의약품(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한 의약품)을 납품하지 말라”는 거대 약사단체의 ‘갑질’성 집단행동을 제재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정당했다”는 인정을 받았다. 약사단체의 반발로 시작된 1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법원도 “약사단체의 행동이 거래의 자유, 시장 경쟁을 제약한 것”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7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최근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약준모)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약준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앞서 지난 7월 서울고법은 공정위 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약준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는데,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00여 약사 회원을 둔 약준모는 2015년 5월 유한양행 측에 “한약사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는 제약사에 ‘즉각적 운동’을 전개할 것”이란 공문을 보냈다. 한약사가 양약 범주에 속하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며, 유한양행이 한약국에 일반의약품을 계속 공급하면 불매 운동 등 ‘실력행사’에 나설 수 있다는 압박이었다. 이에 굴복한 유한양행은 결국 기존 거래처인 34개 한약국에 일반의약품 공급을 중단했다. 이어 약준모는 그 해 6월 90개 제약사에 비슷한 공문을 보내 ‘2차 행동’을 개시했고, 이중 9개 제약사가 한약국과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공정위는 작년 10월 “약준모의 행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7,8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단체가 개별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걸 금지하고 있는데, 사업자단체인 약준모가 제약사에 “한약사와 거래하지 말 것”을 강요해 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이에 약준모는 ▦제약사에 약품 공급 중단을 ‘강요’한 바가 없고 ▦한약사가 ‘비(非)한약’인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건 약사법 위반이어서 ▦제약사의 공급 중단 역시 ‘부당한 거래거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도 약사들은 약사법 조항(제2조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재 업무를 담당하는 자’)을 들어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약사들은 같은 법의 ‘약사와 한약사는 약국을 개설할 수 있다’(제20조) ‘약국은 일반의약품을 팔 수 있다’(제50조)는 조항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한양행 불매운동에 200여 약국이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약준모가 제약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봤다. 설사 약준모의 요구가 권장ㆍ협조의 형식을 띠었어도 사실상 ‘강요’ 같은 결과를 불렀을 거란 얘기다. 재판부는 또 정부 부처 해석을 근거로 현행법상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명백한 위법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행여 위법이라 해도 행정기관 신고 등 법이 허용하는 방법 대신 직접 실력행사에 나선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약준모가 지위를 이용해 다수 제약사가 거래처 및 거래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ㆍ침해했고, 이는 한약사 개설 약국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곤란하게 해 해당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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