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 시한’ 놓고 이견 노출
잇단 영장 기각 때도 파열음
서울중앙지검의 법원 비판 입장문
문 총장, 사전 보고도 못 받아
과거 정권 적폐 수사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과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의 이견이 노출되면서 수뇌부 엇박자에 대해 검찰 안팎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개월 동안 이어진 적폐 수사의 특정 사안에서 문 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입장 차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수사의 최종 지휘권자인 검찰총장과 실세 지검장간에 심상찮은 알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일 문 총장의 “적폐 수사 연내 마무리” 발언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반응은 지휘체계가 엄격한 검찰 생리상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문 총장 발언 몇 시간 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수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총장이 연내 수사 마무리를 공언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수사 생리라 하더라도 일선에서는 ‘노력하겠다’고 나오는 게 일반적이고, 지휘 체계상 정상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올해가 3주밖에 남지 않은 만큼 수 십건 켜켜이 쌓인 적폐수사의 주요 부분도 ‘연내 마무리’하는 게 사실상 무리한 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 총장 발언은 내외부 불만이나 내년 지방선거국면 등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통제가 되지 않는’ 윤 지검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란 시각이 많다. 실제로 문 총장은 지난 10월 중순 간부회의에서 적폐 수사팀 증원을 허가하면서 “11월말 마무리” 입장을 밝히며 신속한 수사를 독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서울중앙지검과 수사 일정 조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든지, 문 총장 입장과 무관하게 윤 지검장의 일방통행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낳고 있다.
그간 수사과정에서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파열음은 심심치 않게 노출됐다. 지난 11월 27일 서울중앙지검은 김관진 전 국방장관,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의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에 “구속제도에서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란 중대범죄가 인정돼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그 점만으로도 간주되는 것”이라며 법원을 강력 비판하는 입장문을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장 명의로 냈다. 이는 윤 지검장 입장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앞서 9월 8일 국정원 댓글사건에 연루된 양지회 전ㆍ현직 간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 됐을 때도 윤 지검장은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격앙된 입장을 보였다. 문 총장은 법ㆍ검 갈등을 표출하는 서울중앙지검 발표를 사전 보고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중앙지검에 문의하라”는 말만 반복하는 등 당시 불만 섞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국정원 파견검사 3명이 간여된 국정원의 검찰 수사방해 사건 처리와 관련해서도 문 총장은 기존 공안수사 관행대로 ‘최상선’인 장호중 검사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윤 지검장이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바람에 대검은 전국 고검장ㆍ지검장 의견까지 청취했고, 윤 지검장은 일괄처리를 계속 설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장 검사장뿐 아니라 변창훈 검사, 이제영 부장검사 3명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변 검사는 비극적 선택을 했다. 사고 이틀 뒤 문 총장은 윤 지검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건 관계인 인권을 더 철저히 보장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라”는 내용의 경고 메시지를 전했고, 대검은 이례적으로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두 수뇌부의 엇박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서울중앙지검 인사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총장 부재상태에서 윤 지검장은 이영렬 전 지검장의 갑작스런 낙마로 발탁됐고, 서울중앙지검 중간간부 인선도 대부분 윤 지검장 의중이 반영됐다. 여기에는 문 총장이 반대했던 인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총장 지휘가 서울중앙지검 수사라인에 제대로 먹히지 않는 까닭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수뇌부 알력설과 관련해 한 검찰 간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결론을 정해놓고 지휘나 지시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일선 청과의 이견이 실제보다 커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화하는 적폐수사에 대해 후유증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문 총장의 출구 모색과 청와대의 적폐청산 전략과 맞물려 국기문란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윤 지검장의 의지, 수사스타일이 부딪치는 상황이라 검찰 지휘계통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한편 이날 문 총장은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등을 불러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뇌물수수 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거론되는 다스 실소유주 의혹 수사 진행 상황을 직접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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