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바이나 히미드(63)가 5일(현지시간) 영국 최고 권위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의 2017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히미드는 33년 된 터너상을 수상하는 첫 비백인 여성 작가다. 비록 터너상이 50세 이하로만 한정했던 연령제한을 없앤 이후 첫 수상자지만 역대 최고령 터너상 수상작가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히미드의 작품이 풍자와 연극성을 지닌 도전적 작품이며 식민 역사와 인종주의, 소수자의 존재감을 무시하는 제도를 적극 문제 삼았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렉스 파콰슨 테이트브리튼 미술관장은 “히미드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주제를 다루는 용감한 작품을 만들었다”라며 “최근 전시에서 지난 수십년간 그가 만들어 온 작품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 보였다”고 설명했다.
히미드는 탄자니아 해안섬 도시 잔지바르 태생으로 현재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주 프레스턴에서 거주 중이다. 지역 대학인 센트럴랭커셔대학 현대미술 교수로 일하면서 작업을 병행해 왔다. 작가로서는 오래도록 미술세계에서 저평가됐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히미드는 수상소감에서 이 평가를 두고 “동료 작가나 기획자들은 나를 알아줬다. 단지 언론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라며 “내가 다루는 주제가 언론에서 팔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다층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히미드의 작품은 전통적인 평면회화와 입체회화가 중심이며, 매체는 다양하지만 주제의식은 대체로 일관됐다. 오랜 식기에 아프리카 식민지 노예들의 삶을 그리거나, 인종적인 편견을 드러낸 영국의 신문지면을 잘라 그 위를 그림으로 뒤덮는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그는 1980년대 영국 흑인 미술운동을 이끈 인물 중 하나로, 당시로서는 대중매체에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인종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서구사회에서 인종주의와 난민 문제가 재점화하면서 심사위원단도 식민주의와 소수자성을 다루는 히미드의 작품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일부 평론가들은 히미드의 출품작들 중 일부가 1980년대 작품인 것을 들어 터너상이 ‘최신 동시대 미술을 사유하고 공공에서 토론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목적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파콰슨 관장은 “80년대 흑인 예술 운동은 당시에는 핵심으로 인식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작업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며 그의 터너상 선정을 옹호했다.
가디언은 올해 터너상이 연령제한을 없애면서 예년에 비해 다소 ‘성숙한’ 느낌을 줬다며 “올해 터너상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은 예전처럼 과도하게 화려하거나 도발적이지 않았다”고 평했다. 히미드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의 후보는 회화작가 허빈 앤더슨, 영상작가 로절린드 나샤시비, 판화와 조각 작가 안드레아 뷔트너였다.
터너상을 수상한 히미드는 2만5,000파운드 상금을 받고, 역대 수상자들이 그랬듯 국제 미술계에서 명성을 크게 높이게 됐다. 역대 수상자로는 맬컴 몰리, 레이철 화이트리드, 데미언 허스트, 애니시 커푸어, 그레이슨 페리, 제러미 델러, 헬렌 마틴 등이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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