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다. 한국이 ‘조세회피처’가 됐다. 5일(현지시간) 외신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파나마, 아랍에미리트, 마카오, 마셜제도 등 17개 지역을 조세회피가 우려되는 ‘비협조적 지역(non-cooperative jurisdiction)’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조세회피처와 비협조적 지역은 다른 개념임을 애써 해명하지만 그게 그거다. 선진국 운운하는 나라로서 국제적으로 조세제도 부당 운영 의혹을 받은 것 자체가 망신이다.
EU의 지정이 뜬금없기는 하다. 그동안 EU는 경제협력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조세 관련 금융정보교환(BEPS)’ 프로젝트에 의한 평가를 관련 기준으로 준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비협조적 지역을 자체 선정하면서 우리나라의 외국인투자 지원제도는 유해조세제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OECD-G20 차원의 국제적 결정과 달리 국내 외국인투자 지원제도를 문제삼았다. 정부가 즉각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국제 합의에 위배되며, 조세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공식 반발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경과를 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EU가 관련 움직임을 보인 건 올 초부터다. 하지만 일반적 다자기구도 아닌 EU가 조세회피 지역 여부를 임의로 가리겠다는 계획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비(非)EU 국가는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부도 OECD-G20의 평가결과를 수용해 온 관행과 합의만을 내세우며 EU의 지정 계획 포기를 기대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말 EU가 임의 지정을 강행하겠다고 통보한 뒤부터 부랴부랴 현지 주재 대사관 등을 통해 교섭을 벌였으나 EU를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정부 당국자들은 EU가 왜 올해부터 비협조적 지역에 대한 지정을 강행했는지는 물론이고, 관련 사실이 보도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지정 가능성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번 일에 대해 “국제기준이나 규범으로 볼 때 (한국에) 문제가 없다”며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김 부총리의 말대로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고 해도 통상현안에 대한 정부 당국의 안이한 대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통상외교가 이리 허술하다면 앞으로 사드 문제로 빚어진 한ㆍ중 통상 갈등이나, 한ㆍ미 FTA 문제의 순조로운 해결을 어찌 기대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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