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페이퍼컴퍼니 차린 뒤
소득 은닉ㆍ조세 회피 집중 겨냥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연루된
대기업 계열사도 조사대상
올 10월까지 혐의자 187명 조사
1조1400억원 추징… 사상 최대
A씨는 몇 년 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뒤 이를 통해 의류제조업체 B사의 지분을 인수했다. A씨는 최근 B사 지분을 C사에 매각한 뒤 수백억원에 달하는 매각차익(배당금 포함)을 페이퍼컴퍼니의 미신고 계좌로 챙겼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득세 수백억원을 추징하고 A씨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6일 A씨처럼 조세회피처나 해외 현지법인 등을 활용해 소득이나 재산을 은닉한 개인과 법인 37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조세회피처의 페이퍼컴퍼니를 차린 뒤 해외에서 거둔 소득을 은닉하거나, 해외 위장계열사와 거래할 때 실적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법인 자금을 유출한 이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특히 조사 대상에는 지난달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국제 탈세 혐의 명단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등장하는 국내 유력 인사와 대기업 계열사도 포함됐다. ICIJ는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의 조세회피처 관련 내부 문서 1,340만건을 입수해 분석한 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등 각국 정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측근 등 거물 정치인들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문건에는 또 한국인 232명과 현대상사, 한국가스공사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와 관련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중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이가 조사 대상에 들어갔다”며 “사회 저명인사와 100대 기업의 계열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구체적 신원과 기업명은 밝히지 않았다.
이날 국세청은 1~10월 역외탈세 혐의자 187명을 조사해 1조1,439억원을 추징한 사실도 공개했다. 지난해는 228명을 조사해 1조3,072억원을 걷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 연간 역외탈세 추징액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와 올해 주요 적발 유형은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국내 법인의 영업권 양도차익 은닉 ▦국내 법인과 페이퍼컴퍼니간 ‘가공거래’를 통한 법인자금 유출 ▦미신고 해외지점의 매출 은닉 등이었다.
국제 자료 확보가 수월해지면서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는 갈수록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 2015년 6월 체결된 한미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FATCA)에 따라 국세청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법인 포함)의 금융계좌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MCAA)을 토대로 지난 9월 영국, 케이만 등 50여개국과 상대국 거주자의 금융계좌ㆍ금융소득정보도 상호 교환했다. 김 국장은 “역외탈세 정보수집 인프라를 계속 늘리고 해외 공조를 강화해 역외탈세가 과세망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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