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2~11월 특별단속에서
국제직불카드를 이용한
자금세탁 등 새 수법도 적발
반도체 부품업체 M사는 2011년부터 50센트(약 540원)에 불과한 불량 반도체 기판 수출 가격을 최대 800달러(87만원)까지 ‘뻥튀기’해 세관에 신고해 왔다. M사는 부풀려진 매출로 대형 시중은행 5곳에 허위 수출채권을 매각해 1,370억원을 빼돌렸다. 이후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실체 없는 서류상 기업)로 불량 기판들을 발송한 뒤 다시 고가에 수입하는 이른바 ‘뺑뺑이 무역’ 범죄를 벌이다 지난 6월 세관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해외 매출액을 부풀려 금융회사에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2014년 ‘모뉴엘 사태’와 닮은 꼴 무역금융범죄다.
관세청은 지난 2~11월 특별 단속을 통해 총 3,628억원 상당의 무역금융범죄를 적발했다고 6일 밝혔다. M사처럼 수출가격을 고가로 신고한 뒤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출대금 등을 가로챈 무역금융편취가 총 1,944억원으로, 전체의 53.6%에 달했다. 이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재산국외도피가 1,021억원, 차명계좌를 이용한 자금세탁이 663억원 등이었다.
이번 단속에선 국제직불카드로 자금을 세탁하는 신종 수법도 적발됐다. J사는 2013년부터 중계상으로 위장한 홍콩 소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철강재를 수입하며 30% 가량 높은 가격으로 허위 서류를 꾸몄다. 이 과정에서 실제가격과 위장가격의 차액 74억원은 페이퍼컴퍼니의 배당금으로 꾸며 현지 은행으로 빼돌렸다. 이후 해당 계좌와 연동된 국제직불카드로 국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52억원을 인출하다 꼬리를 밟혔다. 하루 출금 한도가 400만원에 불과, 매일 4개 계좌에서 1년에 걸쳐 뽑았다.
광산개발 투자금을 빼돌린 뒤 고액 지폐로 밀반입한 일당도 덜미를 잡혔다. 40대 이모씨 등 7명은 2010년부터 6년간 인도네시아 광산 개발과 유연탄 구매대금 명목으로 국내 5개 업체로부터 투자금 1,351억원을 받아 챙겼다. 일당은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투자금을 받은 뒤 이 중 135억원을 싱가포르 해외미신고예금계좌로 옮겼다. 이후 빼돌린 자금을 부피가 작은 고액권 싱가포르 지폐 1만달러(약 850만원)로 바꿔 총 56억원 어치를 수차례에 걸쳐 밀반입했다. 일당은 시계, 보석, 고급 차량을 사는 데 이 돈을 탕진했다.
이 외에도 G사도 단가 4달러(4,300원)짜리 싸구려 중국산 신발을 75달러(8만2,000원)로 속여 수출한 뒤 수출환어음을 국내 은행에 매각해 27억원 상당의 무역금융을 편취했다 적발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대규모 무역금융사기는 결국 사주들의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도피 등 개인 비리로 이어지는 만큼 지속적 단속을 통해 이를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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