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리우하계올림픽에서 반도핑기구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선수단(육상과 역도 제외)의 참가를 허용했다. 올림픽 직전 도핑스캔들이 터졌음에도 국제경기단체(IF)들에 결정을 떠넘겨 국제 사회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푸틴의 푸들'이라는 조롱까지 들으며 수세에 몰렸다.
IOC는 러시아의 평창동계올림픽 퇴출을 결정하기까지 장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날아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유치를 읍소한 뒤 자신들의 안방에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세계 최고의 지위를 과시했다. 올림픽 정신이 정치에 의해 훼손된 최악의 스캔들이었다. 따라서 IOC가 평창올림픽에 러시아의 출전금지 결단을 내린 것은 소치에서 유린당한 올림픽 정신 수호 측면에서 당연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상대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강국이자 스포츠계에서도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다. 더구나 그 중심엔 ‘스트롱맨’ 푸틴이 버티고 있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선수들이 국가의 상징도 없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다는 것은 모욕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역시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러시아 선수들의 도핑)는 완전히 정치적이 되고 있다"며 "반러시아 캠페인의 주요 토픽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으로 알려진 그레고리 로드첸코프 전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대표가 사실은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건넨 당사자라고 공박했다. 지난달 29일 영국 BBC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산하 조사위원회(IC)는 로드첸코프가 직접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제공했으며 선수들은 그가 건넨 약물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 양심 고백을 한 내부 제보자 로드첸코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겠다는 의도였다. 푸틴 대통령도 이 모든 혐의가 “추악한 명성을 지닌 한 남자”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흐 IOC위원장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 올림픽 흥행 타격보다 중요한 건 올림픽 정신 수호라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힘을 쏟았다. 바흐 위원장은 6일 러시아의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금지를 발표하면서 “이번 도핑 사태는 올림픽 게임과 스포츠의 진실성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었다. 적법한 절차를 밟은 IOC 집행위원회는 청렴한 운동선수를 보호하는 동시에 이번 체계적인 조작에 대한 비례적인 제재 조치를 내렸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번과 같은 사태는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며, 세계반도핑기구가 주도하는 효과적인 반 도핑 시스템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운동선수인 나 또한 이번 도핑 조작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전 세계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청렴한 운동선수들에게 유감을 표한다. 우리는 IOC 선수위원회와 함께 결승 또는 연단에 올라설 기회를 놓친 선수들에게 제공할 기회를 찾을 것이다”고 밝혔다.
불참 시 올림픽 방송 중계는 물론 세계 2위 아이스하키리그인 러시아대륙간아이스하키리그 KHL까지 ‘볼모’로 내세워 끝까지 저항한 러시아에 타협하지 않은 이유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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