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러시아 여자 바이애슬론 릴레이 팀. 이중 야나 로마노바(맨 왼쪽), 올가 빌루키나(맨 오른쪽)가 도핑 규정 위반으로 28일 영구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사진=연합뉴스
평창과 러시아의 지독한 악연이다. 지난 2007년 2014 동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 꿈에 부풀어있던 강원도 평창은 급작스럽게 등장한 러시아 소치에 발목을 잡혔다. 삼수 끝에 다시 선 평창에게 개막을 불과 64일 남긴 시점에서 러시아 추방이라는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겹쳤다.
6일(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국가 주도 금지 약물 조작 스캔들에 휩싸인 러시아 선수단의 2018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10년 전 개최지 선정을 놓고 소치에 일발 대역전극을 안겼던 블라디미르 푸틴(65) 러시아 대통령의 막강 파워가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푸틴의 엄포(?)에도 IOC 위원들은 러시아 퇴출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최악의 약물 스캔들로 무너진 스스로의 신뢰와 도덕성 회복을 위해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토마스 바흐(64) IOC 위원장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의 순수성을 향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며 성역 없는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1964∼1988년 흑백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대한 올림픽 자격 박탈 이후 처음으로 IOC의 출전 금지 처분을 받은 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도 종전 후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도핑 문제로 나라 전체가 징계를 받은 건 러시아가 최초다.
IOC는 다만 엄격한 약물 검사를 통과한 러시아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길은 열어뒀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할 전망이다. 이들은 IOC가 독자 설립한 독립도핑검사기구(ITA)의 발레리 프루네롱 위원장과 IOCㆍ세계반도핑기구(WADA)ㆍ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내 도핑방지 스포츠부에서 지명한 전문가들로 이뤄진 패널의 도핑 심사를 거쳐야 한다.
더 큰 걸림돌은 자국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상징성에 있다. 개인 자격으로 평창에 입성할 시 러시아 출신은 올림픽 선수(OAR) 일원으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기 때문에 러시아 국기가 박힌 유니폼을 입을 수 없고 메달을 따도 국가를 연주할 수 없게 된다.
여자 피겨ㆍ아이스하키ㆍ봅슬레이 등에서 강한 동계 스포츠 세계 5강 중 하나인 러시아의 불참은 평창 올림픽 흥행에 직격탄이다.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보이콧에 이은 또 한 번의 치명타다. 이날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NHL의 불참과 러시아의 추방으로 올림픽 아이스하키가 더욱 혼란에 빠졌다”고 논평했다.
미국의 타임 매거진은 “러시아 운동 선수들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라는 나라를 대표할 수는 없다”며 “이대로 러시아가 평창을 건너뛴다면 1984년 이후 34년 만에 올림픽 강대국이 경쟁을 하지 않게 되는 사태를 맞는다”고 우려했다. 당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을 비롯한 14개 공산 국가들이 미국 주도로 거부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IOC의 이번 결정으로 국제 스포츠 사회가 조금은 더 공정하게 보여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IOC 측은 전문 패널을 통해 러시아 선수들이 한국에서 경쟁할 길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IOC의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전했고 미국 지상파 ABC뉴스는 “IOC의 러시아 추방이 추후 국제축구연맹(FIFA)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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