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하는 답장’ 김규진
성의없고 비꼬는 듯한 표정
10대, 20대서 열렬한 지지
‘덩어리 반죽씨’ 임보련
취미로 낙서하다 응모해 대박
“어설퍼도 재밌으면 통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것. 그저 꿈 같은 얘기로 여겨지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 이들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억대 연봉의 스타 이모티콘 작가로 변신한 김규진(27), 임보련(30)씨다.
이제 본명보다 ‘범고래’(김규진), ‘임봉’(임보련)이라는 활동명으로 불리는 게 익숙한 이들은 카카오톡 이모티콘 하나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김씨는 지난 7월 출시돼 10, 20대 남성 이용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대충 하는 답장’을 만들었고, 임씨는 2015년부터 껍질이 반쯤 벗겨진 바나나, 덩어리 반죽 등을 캐릭터화한 이모티콘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카톡 이용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 유명 이모티콘의 창조주인데, 이들 사이에는 이모티콘을 만들기 전까지 그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뒤 대학교 직원으로 근무하던 김씨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카톡으로 남자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데, ‘왜’ ‘뭐’처럼 상대방을 약 올리고자, 일부러 무성의하게 하는 대답이 문자로만 전해지니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매번 표정을 그려서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 ‘이런 이모티콘이 있으면 잘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생전 처음으로 컴퓨터에 그림 관련 프로그램을 깔고 서툰 솜씨로 평소 쓰는 말, 한 자 한 자에 어감을 불어넣었다.
성의 없게 그린 듯한 그림, 비꼬는 듯한 한마디 말과 표정에 30대 이상 이용자들은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젊은 층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대충 하는 답장’은 출시 직후 이모티콘 인기 순위 1위에 올라 지금도 상위권을 유지 중이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출시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김씨의 이모티콘 수입은 벌써 1억원을 넘어섰다. 김씨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1020세대가 실제로 쓰는 말과 표정을 그대로 옮겨놓아 공감을 산 것 같다”며 “처음부터 타깃 층을 넓게 잡지 않고 젊은 층만 겨냥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세 번의 도전 끝에 빛을 본 경우다. 어릴 때부터 워낙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 재미 삼아 먹을거리나 식물 등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그는 우연히 누구나 카톡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한 후 응모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연달아 내놓은 두 개의 이모티콘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출시한 이모티콘이 대박을 치면서 연 1억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직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임씨는 “이모티콘은 무조건 공짜라는 인식이 바뀌려 할 때쯤 시작해 운이 좋은 편”이라며 “유명 캐릭터, 정교하게 잘 그린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던 예전과 달리 조금 어설퍼도 독특하거나 재미있으면 통하는 쪽으로 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도 기회가 됐다”고 겸손해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2011년 11월 단 6종으로 시작한 카톡 이모티콘은 현재 5,500여종으로 불었다. 카톡 이용자 2명 중 1명(약 2,700만명)이 글을 대신해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고, 6년간 1,700만명이 이모티콘을 구입했으며, 매달 발신되는 이모티콘 메시지 수는 20억건에 이른다. 국내외에서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카톡 이모티콘을 내놓고 있는데, 이 중 연간 거래액 10억원 이상의 작가만 24명(2017년 기준)이나 된다.
카톡 이모티콘 작가로 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직접 만든 이모티콘을 카카오 스튜디오에 응모하면 심사를 거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임씨는 “누구나 아이디어와 펜만 있으면 내 그림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다”며 “생각만 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