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가족 단위 유행
주 5일제 맞물려 급격히 성장
야외 취침ㆍ해외 원정 붐도 일어
캠핑 위해 버스ㆍ승합차 개조하고
자전거ㆍ오토바이만으로도 떠나
서울에 사는 김호준(47ㆍ가명)씨는 6년 전 캠핑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눈을 질끈 감고 500만원이 넘는 캠핑장비를 샀다. 장비를 차에 싣고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동반해 인천 계양, 충남 태안 청포대해수욕장 등지로 주말마다 캠핑에 나섰다.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 소음 걱정으로 ‘까치 걸음을 하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들과 쓸데 없는 소비라고 눈치를 주던 아내는 반 년도 지나지 않아 함께 캠핑을 즐기게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가족캠핑은 힘들어졌다. 그나마 두세 달에 한번씩 다니다 2년 전부턴 거의 가지 않게 됐다. 김씨는 대신 동호회에 가입해 캠핑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캠핑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 떠나는 캠핑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아예 혼자서 캠핑을 즐기는 경우도 늘었다. 백팩에 해먹과 랜턴, 구급약, 간단한 먹거리 등 최소한의 짐만 챙겨 섬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떠난다 김씨는 “혼자 떠나는 캠핑은 장소나 사람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며 “부피를 줄이고 더 가벼운 장비도 많이 나와 한결 수월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례는 한국 캠핑문화 트렌드 변천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찌감치 캠핑이 발달한미국, 호주 등지와 달리 2000년대 들어 가족 단위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한국의 캠핑은 최근 다양한 형태로 변주 중이다.
2000년대 들어 주 5일제와 맞물린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 민간ㆍ공공캠핑장의 확대 등이 더해지며 국내에서도 캠핑문화가 급속이 확산됐다. 2010년 60여만명이던 캠핑인구는 2011년 130여만명, 올해 500여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캠핑장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정부가 2004년부터 국민여가캠핑장 조성 사업에 나서면서 전국 각 지역에 적게는 5곳, 많게는 10곳까지 공공캠핑장이 생겼다. 여기에 민간 캠핑장까지 속속 들어서면서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공공ㆍ민간캠핑장은 현재 1,900여곳에 이른다.
아직은 가족캠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보다 간소하고 자유롭게 즐기려는 캠퍼들의 욕구와 장비의 발전 등이 맞물려 지난 몇 년 새 다양한 방식의 캠핑이 이뤄지고 있다.
텐트 안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커다란 리빙쉘텐트 대신 2~3인용 텐트와 최소한의 코펠, 랜턴, 구급약 등을 백팩(배낭)에 짊어지고 캠핑에 나서는 백패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백팩에 경량화된 캠핑 장비를 가지고 가서 산행 중에 비박(야외 취침)을 하는 백패킹이 인기를 끌면서 혼자 캠핑을 즐기는 ‘솔캠족’도 늘어나는 추세다.
분홍색 텐트와 화려한 색상의 매트 등 화려한 장비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감성캠핑’도 요즘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연인 또는 여성 캠퍼가 많아지는 것과 관련이 깊다. 캠핑업체 한 관계자는 “장비 간소화와 맞물려 티타늄, 다운, 초경량 섬유 등을 이용하고 여성들이 선호하는 디자인과 기능을 가미한 장비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팀을 꾸려 해외 원정에 나서는 캠퍼들도 눈에 띈다. 김현진(29ㆍ가명)씨는 동호회 사람들과 지난해 호주 골드코스트와 브리즈번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김씨는 “해외여행 치곤 비용이 저렴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캠핑에 빠져 직접 버스나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이도 늘고 있다. 대전에 사는 조병태(49)씨는 지난 6월 10년 가량 된 버스를 사서 6개월 째 캠핑카로 개조 중이다. 조씨는 “1억이 넘는 캠핑카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아 구조 변경을 하기로 했다”며 “지금 거의 다 마무리했는데 버스구매 비용까지 2,500만원 정도 들었다. 다 마무리하면 가족, 지인들과 캠핑을 가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떠나는 ‘미즈캠’,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간소한 캠핑장비를 싣고 떠나는 ‘바이크캠핑’ 등 다양한 신조어가 쓰일 정도로 새로운 캠핑 트렌드가 등장하며 캠핑이 한국의 대표 여가문화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석영준 ㈔대한캠핑협회 사무총장은 “캠핑장비 보급, 늘어나는 여가 수요, 캠핑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캠핑 인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게 늘다가 2015년 강화도 글램핑 화재로 주춤 했지만, 다시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캠핑문화 확산과 성숙을 위해선 제도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 사무총장은 “캠핑장이 아닌 곳에선 여전히 캠핑을 즐길 수 없다”며 “일정한 지역을 캠핑 가능 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보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재대 김홍설 레저스포츠학과 교수는 “불연성 제품을 확대하는 등 장비 안전성에 대한 규제와 안전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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