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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아주 특별한 만남

입력
2017.12.05 17:5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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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이 교차하는 이들 곁에 잠시 서 있었다. 오래 전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삶과 죽음의 사이를 넘나든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 그 ‘사이’의 시기는 서로 엇비슷했다. 한쪽은 80년 5월 광주의 거리를 지키던 이들이고 또 다른 한쪽은 70년대와 80년대가 갈릴 즈음 간첩이라는 거짓 멍에를 짊어져야 했던 이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이 내지른 폭력을 개인이 온전히 받아야 했다는 것과 이로 인한 치명적 내상을 지닌 채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밭은 숨으로 지내왔다는 데 있다. 세상은 언젠가부터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그리고 70ㆍ80년대 조작간첩 고문피해자라고 그들을 명명했다.

만남의 자리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심리회복을 위한 나의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사회복지법인 ‘W-ing’ 최정은 대표의 제안으로 마련됐다. 이분들께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드리고 싶다는 최 대표의 제안이 실제로 이뤄진 날은 11월 21일 정오. 이날 아침 광주에서 상경한 5ㆍ18 피해자들과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이 모여 첫 악수를 나눈 뒤 너른 식탁 사이에 마주 앉아 이내 따뜻한 위로의 눈빛을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당신의 내면에 드리운 아픔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듯, 서로 주고받는 시선의 온도는 한층 따사롭고 달달하게 채워졌다.

“○○○에서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몰라요.” “물고문에 고춧가루고문까지! 그때는 정말 이대로 죽는 줄 알았지요.” “이렇게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 …!”

말문이 터지자 주거니 받거니 자신의 아픈 기억을 들추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가슴 아픈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듣는 이들 모두 한숨 섞인 탄식을 뱉으며 서로의 감정을 어루만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든 얘기는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었다. 내면에 드리운 상처의 골은 하염없이 깊었지만 일체적 연대감으로 뭉친 그들은 골 하나하나를 메워 평평하게 보듬는 시간을 이어갔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정성 가득한 먹거리가 분위기를 더했고 웃음 터지는 시간의 간격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을 가른 ‘그날’이 있기 전 이들은 대개 월급쟁이거나 조그만 구멍가게 자영업자였고 집안일을 돕거나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등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이었다.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생명의 가치가 처절하게 훼손된 그때 이후 이들의 일상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수없이 반복된 고문과 수형 생활, 그리고 출소 후 이어진 감시와 통제 속에서 지치고 쓰러지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권력에 의해 자신의 삶 일부가 아닌 전체를 잃었다는 말로 서로를 살피고 위로했다. 위안의 시간은 저녁의 삼겹살 파티로 연장됐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를 즈음, 잠시 자리를 비웠던 5ㆍ18 피해자 곽희성씨가 꽃다발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식당에 들어섰다. 꽃가게를 찾아 30분이나 낯선 거리를 뒤졌다는 그는 79년 삼척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인 김순자씨에게 꽃다발을 쥐어주었다. 건강하셔야 한다고, 그래야 다시 또 만날 수 있다고 김씨를 힘껏 안아주기도 했다.

그 곁에서 그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고통과 상처로 응고된 감정이, 온전한 공감과 위로의 손길 앞에서 눈 녹듯 풀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 당신이 더 힘들었을 거라며 서로 어깨를 감싸는 몸짓들을 보며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기도 했다. 헤어짐이 아쉬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던 그들의 뒷모습은 서로에게 한없이 든든해 보였다.

임종진 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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