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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안 편든 살레 피살… 예멘 내전에 ‘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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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안 편든 살레 피살… 예멘 내전에 ‘암운’

입력
2017.12.05 17:5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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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후티 반군에 배신자 낙인

자택 공격 당해 비참한 최후

33년 철권통치 재기 물거품

“뱀머리 위서 춤추다 물려죽어

예멘, 복수의 악순환 빠질 것”

4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 대원들이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주거지 인근 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사나=AP 연합뉴스
4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 대원들이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주거지 인근 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사나=AP 연합뉴스

“평생 동안 ‘뱀들의 머리 위에서 춤췄던’ 남자가 오늘, 자신의 애완뱀 한 마리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4일(현지시간)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예멘 대통령이 ‘전략적 동맹관계’에 있던 예멘 후티 반군한테 살해되자 미국의 중동 전문가인 나드와 알 다우사리는 트위터에 이 같은 촌평을 남겼다. 1978년 쿠데타로 북예멘 정권을 잡은 뒤 통일 예멘(1990년)의 초대 국가수반과 첫 직선제 대통령(1999년) 등에 올라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로 불명예 퇴진한 살레는 33년에 걸친 자신의 철권통치를 스스로 ‘뱀 머리 위에서 춤추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정치적 권모술수에 능했고 온갖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존본능도 탁월했던 그였지만, 권좌를 되찾으려는 노욕에 반군과 손을 잡고 내전마저 불사했던 이번 시도는 결국 물거품으로 끝났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 측에 ‘휴전 중재’ 제안을 하자마자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3년에 걸친 내전으로 쑥대밭이 돼 버린 예멘의 앞날에 더욱 암울한 잿빛 전망만 드리우고 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이날 살레 피살 소식을 전하면서 예멘 내전이 한층 더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영국 BBC 방송은 “살레를 지지하는 무장단체들은 후티 반군에 대한 복수를 모색할 것이고, 사우디 주도 연합군도 (조만간) 공습으로 뒷받침할 것”이라며 “예멘에서 평화를 꿈꾸는 것은 훨씬 더 힘겨워졌다”고 내다봤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이런 방식으로 살레가 죽은 것은 예멘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을 더욱 격화시키고, 예멘 국민에겐 더 많은 고통을 줄 것이다. ‘복수의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라는 국제위기그룹 분석가 에이프릴 롱리 앨리의 말을 전했다.

이처럼 공통된 분석이 나오는 것은 우선 현 국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2012년 살레 퇴진과 함께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예멘에선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빈곤이 계속됐고, 이는 시아파인 후티 반군의 세력 확대를 부추겼다. 재기를 꿈꾸던 살레는 후티 반군과 손을 잡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하디 정부에 맞서 왔는데, 2014년부터 본격화한 내전이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지난 2일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에 “침략을 중지하고 국경봉쇄를 해제하면 (갈등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고 했다. 내전 중단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왔으나, 이를 ‘배신’으로 여긴 후티 반군의 살레 살해로 상황이 다시 180도 바뀌어 버린 것이다. BBC는 “독재자라 해도 협상능력이 있는 살레의 죽음은 예멘 내전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멘 내전이 중동 패권을 다투는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성격을 띤다는 사실은 이 나라 미래를 더욱 점치기 어렵게 만든다. 후티 반군을 물밑에서 후원하는 이란과 달리, 사우디는 아예 연합군을 구성해 예멘 정부군과 함께 주요 플레이어로 나서고 있다. 심지어 사우디 뒤에선 미국과 영국 등이, 이란의 배후에선 러시아가 각각 입김을 불어넣기도 한다. 국제사회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맞물려 내전이 지속된 3년간, 예멘에선 6,000~1만명(민간인 60% 추정)이 폭격과 공습 등으로 숨졌고, 700만명은 아사 위기에 놓여 있다. 올해 4월부터는 콜레라 창궐로 90만명이 감염되기도 했다. NYT는 사설에서 “예멘에서 인도주의 위기가 계속 커지고 있다”면서 “평화를 위한 내전 중단 협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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