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문송하다’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의 준말이라고 한다. 취직 시장 등에 나온 문과대 출신들이, 워낙 취직도 안 되고, 딱히 사회에 쓸모도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반영된 말인 것 같다. 불과 몇 해 전 정부의 온갖 모임에서 ‘이공계 기피’를 걱정하던 때가 새삼스럽다. 그렇다면, 이공계 기피를 야기한 문제는 갑자기 해소된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고 힘든 건 여전한데, 단지 문과 출신들이 운신할 여지가 기술 격변의 시대 속에서 극적으로 쪼그라들어, 상대적으로 더욱 힘들어 진 것이리라.
나름 데이터 분석 분야의 최선두에서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방법론의 적용을 총괄하는 일을 수행하는 내 입장에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IT와 친화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인문사회 분야의 지식을 기반으로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수립했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뛰어난 이공계 출신들이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인 것 못지 않게, 내가 문과 출신인 것이 감사하다.
주로 텍스트와 같은 비정형데이터를 다루면서,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빅데이터 등의 분석 방법론을 수립하는 근간이 된 핵심 지식은 컴퓨터 사이언스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소통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언어 철학, 기호학, 사회 구조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구조화한 결과를 수학적으로 재현하고 알고리즘으로 반영하는 작업이 근본이 되었다.
물론, 이런 분야의 섭렵을 통한 내 사유 체계가 현실적 유용성과 적합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분야 동료들과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철학적 사유와 해석을 이해하는 수학자, 항상 최적화를 중요시하는 컴퓨팅 방법론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해석적 맥락을 알고리즘에 포함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컴퓨터 공학자, 복잡한 지식을 비즈니스와 사회 현실 속에서 친숙한 언어로 풀어내어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의 협업이 있을 때 진정한 창의성과 유용성이 발현하는 경험을 했다.
최근 ‘알파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있다. 그러나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인공지능이 특정한 장르를 벗어나 보편적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아직 한참 멀다는 것도 실감한다. 그 결정적 장애물은 순수하게 공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연역과 귀납의 결정체인 모델링을 위한 인간의 사유와 상상의 능력이다. 바로 인문사회과학이 그런 일을 수행한다. 또한 온갖 모델과 방법론적 적용의 빈 틈을 역사학적 지식이 베풀어 주는 지혜와 철학의 체계화된 상상력이 메워준다.
예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인사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수십 년 간 인력을 운용해본 결과, 똑똑한 이공계 출신에게 문과 지식의 일을 가르쳐 시키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용이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평가가 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제가 있다. 똑똑한 인력들에게 협업을 극대화하는 리더십을 진작시키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발의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한 조직문화보다는 농업적 근면성에 입각한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족할 때에만 그 패러다임은 유효하다.
결국, 국가와 사회가 어느 수준에 머물 것인지가 문과적 소양과 상상력의 쓸모(?)를 결정한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근본적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 여전히 ‘문송’한가? 스스로 미안해 하지 말았으면 한다. ‘죄송’해야 할 건 사회와 조직의 수준이다.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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