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열풍이 불고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가장 각광받는 곳은 어디일까. 구글 트렌드로 지난 5년간 비트코인의 지역별 관심도를 살펴본 결과 나이지리아에서 검색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 트렌드의 지역별 관심도는 일정 기간 해당 검색어가 어느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외에 가나(2위), 남아프리카공화국(3위)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지난 5년간 비트코인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에 올랐다. 4위는 슬로베니아, 5위는 싱가포르였다.
이처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비트코인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허프포스트는 지난 달 17일 나이지리아에서 비트코인이 경제보호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원유를 팔아 공산품을 수입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유가 하락으로 자국 화폐인 나이라 가치가 폭락했다. 이에 나이지리아 정부가 외환 통제를 실시하면서 나이지리아 은행에서만 발급한 직불 및 신용카드로 한 달에 100달러까지만 외환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인터넷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나이지리아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아 외환 거래의 제약을 피할 수 있다.
또 나이지리아는 은행 계좌 개설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 인구 1억 8,000만명 중 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은 3,000만명 뿐이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이 금융시스템을 불신해서 은행에 많은 돈을 예금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나이지리아 경제의 이 같은 허점을 파고 들었다. 비트코인은 은행 등 국가의 금융시스템이 아닌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이용자들끼리 직접 사고 팔 수 있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은행계좌가 없어도 팍스풀 등 각종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애플 아이튠즈의 기프트 카드, 현금, 직불카드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을 구입한다.
프랑스의 가상화폐거래소 라메종 뒤 비트코인의 공동창립자 마누엘 발랑트는 지난달 17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보다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며 “휴대폰만 있으면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기프트 카드로 비트코인을 구매한 뒤 수입품 결제 대금을 지불한다. 이렇게 되면나이지리아 정부가 규제하는 거래액 한도를 뛰어넘어 거래할 수 있다. 팍스풀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중국에서 아이튠즈 기프트 카드로만 주당 1,000만달러 이상의 금융 거래가 이뤄진다. 허프포스트도 팍스풀의 가장 큰 고객은 미국이 아닌 나이지리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업계에서는 비트코인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가상화폐인비트코인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보거나 오로지 투기 대상으로서 거품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반면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을 갖춘 선진국과 달리 연간 누적 인플레이션이 800%를 넘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남미의 베네수엘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오히려 비트코인이 안정적 금융거래수단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은행 거래를 하지 못해도 재산 보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엄청난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자국 통화보다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예 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를 자국 통화로 도입하려는 곳도 있다. 유가 하락과 석유 수출 감소, 자국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국가 부도위기에 몰린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3일 “새로운 가상화폐인 ‘페트로’를 발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상화폐 헤지펀드인 아틀란타 디지털 커런시 펀드의 알리스테어 밀네 최고투자책임자도 이런 점에 주목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전세계의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