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이래 꾸준히 추진해 오던 무슬림 국가 중심 입국제한 명령, 이른바 ‘반이민 행정명령’이 처음으로 연방법원의 관문을 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4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가 북한을 포함한 8개국을 대상으로 여행자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이 한시적으로 전면 집행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강성 진보 성향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제외한 7명이 허용 편에 섰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이 지명한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도 보수 성향 대법관과 보조를 맞췄다.
이로써 트럼프 정부는 현재 하급심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리비아, 소말리아, 시리아, 예멘, 이란, 차드 등 ‘무슬림 다수 거주국’ 6개에 베네수엘라ㆍ북한을 포함한 8개국에서 입국하려는 여행자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가 신원을 관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능력이 불충분하므로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해 시급히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호소했고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번에 허용된 행정명령은 기존의 명령이 연방법원에서 2차례에 걸쳐 위법 결정을 받은 뒤 트럼프 정부가 7월에 세번째로 내린 명령이다. 새 명령은 미국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입국자들을 비자 거부 대상에서 제외, 그간 사법부와 언론에서 문제로 지적했던 ‘가족마저 생이별시키는 무차별 입국 거부’란 혐의를 피했다. 미국 시민과 밀접한 관계란 ▦가족 관계이거나 ▦문서화된 사업상 관계일 경우를 가리킨다.
서구 언론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테러 방지에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시하고 있다. 미국 내 테러범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ㆍ이집트ㆍ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또는 미국 태생인 경우가 다수인데 입국 거부 국가 목록에선 늘 빠져 있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 경제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이란 의심도 나온다.
게다가 이번 결정은 연방대법원이 해당 명령이 헌법을 위배했는지 본안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라 일시적 조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집권 첫날부터 내세운 ‘반이민 정책’이 드디어 결실을 보면서 본안 재판도 낙관할 수 있게 됐다”고 전망했다. 상원의 세금 개혁안 통과에 이어 반이민 명령 발효까지 성사되며 집권 1년 내내 난맥에 빠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탄력을 받은 셈이 됐다.
반면 반이민 행정명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무슬림 성향을 반영한 차별적 조치라며 법정투쟁을 벌였던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측은 “행정명령이 당장 효력을 발휘하는 건 아쉽지만 본안 재판이 아니다”라며 “자유와 평등, 사랑하는 이와 억지로 떨어지는 이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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