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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진 덕후들, 게임 창작물로 돈 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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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진 덕후들, 게임 창작물로 돈 벌다

입력
2017.12.05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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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재해석한 유화

목걸이ㆍ향수 등 전시ㆍ판매

상품 예상보다 완성도 높아

하위문화 머물렀던 ‘덕질’

확장형 축제로 발전한다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할 수도

지난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 4회 '네코제'가 수많은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넥슨 제공
지난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 4회 '네코제'가 수많은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넥슨 제공

지난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작품들로 향했다. 이들과 함께 손가락과 머리, 어깨에 나비를 앉혀놓은, 분홍색 눈동자와 머리칼을 가진 신비로운 여인의 그림을 한참 쳐다보고 있던 기자에게 행사 관계자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롬’씨의 작품”이라고 알려줬다. ‘귀는 왜 이렇게 뾰족하게 그렸을까’ 속으로 떠올렸던 궁금증은 그의 추가 설명으로 풀렸다. 관계자는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루시드와 아이템 중 하나인 나비를 작가가 재해석해 그린 유화”라고 알려줬다.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네코제' 입구에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순수예술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일러스트 작가 롬의 '루시드, 오프-듀티'(오른쪽) 작품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루시드를 재해석한 유화다. 넥슨 제공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네코제' 입구에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순수예술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일러스트 작가 롬의 '루시드, 오프-듀티'(오른쪽) 작품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루시드를 재해석한 유화다. 넥슨 제공

전시관을 연상시키는 입구를 지나자 액세서리부터 쿠션, 피규어 등 다양한 물품을 사고파는 장터가 펼쳐졌다. 이곳은 넥슨의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게임 마니아들이 직접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도 하는 ‘네코제’(넥슨 콘텐츠 축제) 현장이다.

2015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4회째인 네코제에서 게임 IP에 영감을 받아 상품을 만든 이들은 ‘유저 아티스트’로 불렸다. 게임을 하기만 하던 수용자가 창작자로 변신한 것인데, 내놓은 물건들은 당장 상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방문객들은 맘에 든 물건을 구매해 담은 쇼핑백을 양손 가득 들고 있었고 부스 곳곳에는 매진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게임 캐릭터를 본뜬 인형 정도 전시됐으리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됐다. 게임 캐릭터가 걸고 있는 목걸이나 귀고리가 백화점에서 볼 법한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로 재탄생 됐는가 하면, 캐릭터를 콘셉트로 한 향수도 진열돼 있었다. 향수 부스의 판매자는 “메이플스토리 팬인데 은월이란 캐릭터는 동양적인 매력이 커서 동백꽃 향을 활용한 향수를 만들었다”고 제품을 설명했다.

네코제의 밤은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총 7팀의 유저 아티스트들이 넥슨 게임에 사용된 배경음악을 편곡한 피아노 독주, 전자기타 연주, 밴드 공연을 연달아 선보였다. 입장권 5,000원씩을 지불하고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소화된 게임 음악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2, 3일 양일간 열린 네코제를 다녀간 방문객만 8,000여명으로 집계됐다.

네코제 1회부터 유저 아티스트로 참여해 온 김수진(28)씨의 직업은 3차원(3D) 그래픽 디자이너다. 김 씨는 “마비노기 영웅전 마니아여서 처음엔 캐릭터를 본뜬 아크릴 스탠드로 참여했고 점차 쿠션, 담요, 컵 등으로 상품을 늘려갔다”며 “온라인에서 게임을 즐기기만 하다가 오프라인에서 창작 활동까지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 ’덕질’(덕후질ㆍ한 분야에 열성적으로 몰입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건 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게임 회사가 자사 IP를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개방해 자유롭게 창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행사는 네코제가 유일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문화 콘텐츠 창작 생태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평가한다. ‘덕후’들이 응집할수록 연계된 창작물이 다양하게 탄생하고, 이를 통해 서브컬처(하위문화)에 머물렀던 영역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문화축제의 산업적 가치를 주제로 열린 대담에서 이승윤 건국대 교수는 “바둑이라는 대중적 요소에 직장 생활의 고충을 담은 미생 덕분에 더 많은 대중이 웹툰에 빠졌고 드라마까지 성공하면서 산업적 가치가 커졌다”며 “일반 대중을 이처럼 생산적 덕후로 유도하는 방법을 콘텐츠 기업들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성식 용인대 교수는 “미국 마블과 DC도 IP를 개방한 이후, 콘텐츠 수익보다 라이선스 수익이 10배 더 커졌다”며 “자발적으로 새 콘텐츠가 생산되고 변신, 확장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지금은 ‘취향의 시대’”라며 “네코제 같은 축제가 지금은 충성도 높은 이용자 중심이지만 다양한 기업들이 함께 하는 확장형 축제로 발전한다면 주류를 위협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그림 311월 23일 서울 서교동에서 문화축제의 산업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김봉석(왼쪽) 문화평론가와 이승윤(가운데) 건국대 경영학 교수, 박성식 용인대 문화콘텐츠학 교수.
그림 311월 23일 서울 서교동에서 문화축제의 산업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김봉석(왼쪽) 문화평론가와 이승윤(가운데) 건국대 경영학 교수, 박성식 용인대 문화콘텐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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