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나는 하버드대 와이드너 도서관 5층에 마련된 고대 근동학 도서관에 초초하게 앉아있었다. 수메르 신화를 읽는 첫 수업시간이다. 이곳의 이름은 ‘룸-지(Room G)’다. 고대 이집트어 성각문자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그리고 페르시아 쐐기문자와 관련된 도서들로 가득 차 있는 이상한 고서들의 창고다. 이곳은 언어들을 전공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의 아지트다. 20평 남짓한 작은 도서관 사방은 색과 빛이 바랜 가죽 양장 고서들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이곳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 책들이 저마다 아득한 먼 과거로부터 가져온 고유한 냄새를 지니고 있었다. 이 도서관 중앙에는 10명 정도가 둘러서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직사각형 원목 책상이 놓여있다. 이 책상도 노아홍수 이전에 만들어졌는지, 판독 불가능한 난해한 낙서들로 가득 차있다.
그때 나는 다른 세 명의 학생들과 함께 전설적 교수 한 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의 이름은 톨키드 야콥슨(Thorkild Jacobsen 1904-1993)이다. 야콥슨 교수는 수메르어 토판 문서들을 발굴하고 판독하고 번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다. 그가 1974년에 이미 학교를 은퇴했지만, 2주에 한 번씩 노구를 이끌고 이곳에서 수메르어를 가르쳤다. 그의 키는 190cm가 넘었다. 그를 보는 순간,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 영웅인 길가메시가 떠올랐다. 수메르어는 인류 최초의 문자다. 기원전 3300년경,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락) 남부지역에서 그림글자로 등장했다. 초기 인류는 이곳에서 유프라테스강와 티그리스강이 태고로부터 강둑에 쌓아 올린 진흙을 네모로 다듬었다. 그들은 표면이 아직 굳지 않은 토판 위에 갈대 나뭇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형상으로 그렸다. 후대사람들은 이 문자가 마치 ‘못’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쐐기문자’라고 부른다.
야콥슨은 쐐기문자가 새겨진 토판을 들고 와 학생들에게 차례로 돌려주면서, 읽고 해석하라고 시켰다. 이 토판에는 수메르 여신 인안나(Innna)가 지하세계로 내려가 왕권을 차지하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할 일은 우선 신기하게 생긴 쐐기문자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외우고 필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집’이란 명사는 수메르어로 ‘에(e)’, ‘위대한; 큰’이란 형용사는 ‘갈(gal)’이다. 그리고 ‘큰 집; 신전’이란 단어는 이 두 단어를 합쳐 ‘에.갈’이다. 내가 단어를 개별적으로 구별하여 학습하기 전에는, 모든 수메르 문자들이 똑같이 보였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베끼고 암기하다 보니, 그 글자가 눈이 들어 올 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와 구별되기 시작하였다.
수메르어 공부는 나에게 인생을 지탱하는 두 가지 가치를 알려주었다. 첫 번째 가치는 ‘근면(勤勉)’이다. 평상시에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예습과 복습을 반복해야 한다. 수메르어에 매일 매일 일정한 시간을 바쳐 정성을 보여야, 수메르어는 자신이 담고 있는 오묘한 깨달음을 조금씩 알려준다. 근면을 통해 나는 ‘내가 매일매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내 자신’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가치는 ‘겸손(謙遜)’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항상 모르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만은 금물이다. 나는 수메르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 만큼 모른 것들이 비례해서 많아졌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고백한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새로운 언어의 체계를 배우는 학문을 ‘그람마(gramma)’라고 불렀다. ‘그람마’는 원래 ‘그라마티케 테크네’의 준말로 ‘글자를 배치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람마’란 단순히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그 단어들의 전략적인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런 배치에는 순서가 있고 강조를 위한 침묵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람마란 최적의 배열이다. 그래야 그 문장이 감동적이며 아름답다. 동양에선 ‘그람마’를 ‘문법(文法)’이라고 부른다. 문법은 어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원칙이다. 문법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언어만의 내공이며 무늬다. 단어들은 문법을 통해 언어로 완성되어 우리에게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법’이란 보이지는 않지만, 문자들을 지배하는 도덕이며 규율이다. ‘법’없이 그 내용물인 ‘문자’들이 존재할 수 없다.
1993년 5월, 나와 동료들은 ‘룸-지’에서 야콥슨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휴강했다. 그날 저녁 뉴욕타임즈 신문에서 야콥슨 교수의 부고(訃告)를 읽었다. 세계적 수메르학자 야콥슨이 책상에 앉아 수메르 문헌을 읽던 중 편히 영면하였다. 그의 삶은 수메르어 문법처럼, 간결하고 강력했다. 그는 자신에게 최선인 삶의 문법을 찾은 도인이다. 나는 나의 삶을 숭고하게 표현하는 문법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 문법을 통해 세상에 ‘나’라는 아름다운 시를 낭독할 수 있을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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