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력 완성 선언 뒤 한반도 기로
北, 평화 공세 나설 듯… 美 응수가 관건
한반도가 기로에 섰다.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다. 향후 시나리오는 한미와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책ㆍ유화책 중 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대략 네 가지로 압축된다.
①압박 1: 공포의 균형
현재 한반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의 핵무장이 임박함에 따라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문재인 정부와 도널트 트럼프 미 행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2차 핵타격 능력을 확보하고 한미는 대응 군사력을 증강해 핵전쟁 위기가 상존하는 ‘공포의 균형’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2차 핵타격 능력은 핵공격을 받은 뒤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시나리오는 미국이 장기전에 대비할 때 유력해진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3일 “미국이 지금껏 해온 대로 대북 압박ㆍ제재를 강화하고 전략 무기의 한반도 투입을 늘려 확장억제력을 키우는 식으로 정권을 교체하든 평화적으로 해결하든 장기적 해법을 모색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 도발 중단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지속된다. 위기도 계속 증폭될 공산이 크다.
②압박 2: 강제 비핵화
국제사회의 제재ㆍ압박을 못 이긴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거나 미국의 예방 공격, 체제 붕괴 또는 정권 교체 시도 등에 의해 강압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전봉근 교수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반면 전쟁 발발 위험성은 커 한미 정부가 기피하는 방안”이라고 평가했고,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시간은 미국보다 북한의 편일 것”이라며 압박 지속의 효과에 대해 비관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포 이후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이나 무력을 동원한 북한 해상 봉쇄 같은 최고강도 압박 방안도 미국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자국 이익과 인도적 우려를 내세울 중국ㆍ러시아의 동의나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③관여 1: 북핵과의 동거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상존한다. 올 10월 한 인터뷰에서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북미 간 충돌 가능성이 20~25%”라고 하기도 했다. 더욱이 미국은 지난달 29일 북한이 쏴 올린 ‘화성-15형’을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사실상 규정한 상태다.
아직 한미 정부 양쪽 모두 강력히 거부하고 있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핵무장한 북한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북핵과의 동거’를 수용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일각에는 없지 않다. 천영우 한반도안보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최근 세미나에서 “재선에 신경 써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핵ㆍ미사일 동결 수준에서 북한과 타협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미국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④관여 2: 비핵ㆍ평화 체제
우리가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전략 목표가 ▦전쟁 방지 ▦평화 정착 ▦비핵화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기여 등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미가 전향적으로 협상에 착수한다면 ‘동결에서 핵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과 평화협정ㆍ경제지원ㆍ북미수교ㆍ군비통제ㆍ남북개선 등을 통째로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포괄적 접근 방안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전봉근 교수는 “현 추세가 지속될 때 한국은 안보가 극도로 악화하거나 북핵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인 바, 더 늦기 전에 국익에 부합하는 비핵ㆍ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국력을 결집해야 한다”면서도 “과거 북핵 협상과 평화 체제 협상 실패 역사를 감안할 때, 비핵ㆍ평화 체제 구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의 강한 의지와 더불어 주변국과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과 역량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 넘어간 공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적극적인 대화 공세를 펼 것으로 점쳐진다. 2일 러시아 민영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 방북 대표단에 속했던 비탈리 파쉰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 사이 이뤄진 방북 결과를 소개하면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영남은 다만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만 협상에 나가겠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파쉰 의원은 덧붙였다. 러시아 대표단은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김영남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공세의 첫 단계는 핵ㆍ미사일 동결 선언일 수 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해 핵 완성 선언 다음 수순으로 핵 동결 선포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더 이상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북한이 약속할 경우 한국과 중국은 분명 대화를 시작하려 할 테고 마지못해 미국도 대화 테이블엔 앉을 텐데, 그러면 대북 압박 동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정부 판단도 일단 북한이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며 관망하리라는 것이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급격한 상황 변화나 외부적 요인이 없다면 당분간 북한이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면 전환의 관건은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북한의 핵 탄두 탑재 ICBM이 실제 완성된 건 아니라는 전제 하에 협상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제재를 강화할 공산이 크지만, 북한이 선제적으로 평화 공세를 펼 경우 거꾸로 국제사회에 의해 협상에 나서라는 압박을 받는 쪽은 미국이 될지 모른다”며 “공은 미국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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