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드물어 질병 안돼” 공단 주장 받아들이지 않아
법원 “직무와 질병 인과관계는 해당 공무원이 기준”
“20여년 동안 경찰 단화를 신고 하루에 8시간 이상 걸으며 순찰을 하거나 긴급출동 때 순찰차에서 신속히 하차해 빠르게 뛰어 몸싸움을 하는 등의 일은 발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발에 맞지 않는 경찰 단화를 오래 신고 근무한 탓에 발에 병이 났다면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6단독 심홍걸 판사는 경찰관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공무상 요양을 승인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1993년 경찰에 임용된 A씨는 2016년 ‘양측 족부 무지외반증’ 진단을 받았다.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평소 지급받은 경찰 단화가 불편해 잦은 부상을 당했던 A씨는 무지외반증에 걸린 것은 경찰 단화 때문이라며 공무상 요양 신청을 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무지외반증에 걸린 것과 신발 사이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고, 수많은 경찰 공무원들이 동일한 근무조건에서 공통적으로 지급된 단화를 착용하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 같은 요양승인 신청을 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지외반증으로 요양승인을 신청한 사례는 그 동안 A씨를 포함해 2명밖에 없었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심 판사는 “A씨에게 보급된 경찰 단화는 당사자의 발 길이 등 치수를 측정해 제작된 게 아니다”며 “다른 경찰이 단화로 인한 부상이 거의 없다는 이유만으로 경찰 단화가 A씨 발에 무리를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A씨뿐 아니라 일부 경찰도 경찰 단화를 신고 도보 순찰하는 경우 발에 무리가 간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 판사는 특히 ‘직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공무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다른 경찰들은 단화 때문에 부상을 입는 일이 거의 없다”는 공무원연금공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봤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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