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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워마드와 미러링의 그림자

입력
2017.12.01 11: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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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호주에 거주중이라는 한국인이 자신이 호주 아동을 성폭행했다는 글을 한국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는 음료수에 약물을 타는 사진, 잠든 아동 사진 등을 함께 올리며 성폭행의 상세한 정황을 묘사했다.

파문이 일었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있었고, 호주 출신 방송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도 있었다. 이틀 후, 호주 연방 경찰에 한국인이 아동 성 착취 자료를 제작한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보도자료가 게시되었다.

이 사건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실제 성폭행이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있지만, 피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평소에도 해변이나 거리에서 아동을 몰래 촬영했다는 얘기도 있다. 진상이 어떠하든 이게 참으로 질 나쁜 행위란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기이한 일은 이 이후에 일어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오히려 피의자를 비호하고, 심지어 변호사 선임을 위한 모금 운동에까지 나선 것이다. 규모도 작지 않아 수백만 원이 금세 모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키워드가 있다. 문제의 글이 올라왔던, 그리고 그를 비호한 커뮤니티 ‘워마드’다. 워마드는 ‘메갈리아’에서 분화되었다. 메갈리아는 세간의 여성 혐오 문화를 성별만 뒤바꾸어 그대로 재현하며, 이를 일컬어 스스로 ‘미러링’이라 불렀다. 그들은 이를 통해 만연한 여성 혐오 문화를 고발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새로운 조류엔 반발도 많았지만 호응 또한 많았다.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이 조류는 곧 급변했고, 심지어 약자와 소수자도 남성이라면 멸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창했다. 아웃팅을 하자는 운동이 발생할 정도로 말이다. 이로 인한 논쟁이 과열되며 메갈리아는 쇠락했으며, 워마드가 탄생했다.

워마드의 미러링은 더 거칠었다. 노골적으로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고 패륜적 언행을 재현했으며, 성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멸시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2 년여 전의 일이다.

언론 등 주류 미디어가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주목했을 때 사실 메갈리아는 이미 커뮤니티의 기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주류 미디어는 시대에 한참 뒤쳐졌던 셈이다. 미러링 문화는 워마드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이 흐름은 트위터 등을 통해 다양한 경로에 퍼졌다. 그 극단에서 일어난 게 이번 사건이다. 이것이 오늘의 미러링인 것이다.

워마드의 위험성을 과장할 생각은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일베, 소라넷 등 훨씬 ‘패륜적인’ 곳이 많다. IT부터 스포츠까지 무난한 소재를 다루는 평범한 커뮤니티에서조차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워마드는 이처럼 깊은 성차별의 뿌리에 비하면 얕은 문젯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작금의 미러링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사례에서 아동 성폭력을 그들이 비호하고 모금 운동까지 벌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미러링이라는 것이었다. 남성들의 아동 성 착취, 성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 그 폭력은 실재하는 것이다. 미러링이란 핑계가 그 폭력의 무게를 지울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아동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시작은 성소수자 멸시였다. 지금도 여전하다. 페미니스트를 칭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얘기하던 이가, 다른 이의 성적 지향을 공개하고 비웃었다. 그 후엔 트랜스젠더를 배제했다. 그들의 젠더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그리고 이제 끝내는 아동 성폭력을 미러링 수단으로 삼았다.

미러링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달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건 사실 오래도록 많은 이들이 써온 풍자의 한 기법일 뿐이다. 도구일 뿐인 미러링이 어느새 본질을 잡아먹은 형국이다. 풍자란 재미야 있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실패하기 십상인 법, 이제 진지하게 워마드의 그림자를 얘기할 때가 되었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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