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교양 부문’에선 교양의 ‘수준’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응모한 책들 가운데 일부는 교양이라는 이유로 너무 평면적인 서술로 일관했다는 따끔한 지적이 있었고, 이에 반해 교양이니만큼 그 덕에 오히려 소구력 차원에서 나을 수 있다는 반론도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선정된 책들은 주제의식을 비장하기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게 풀어낸 책들이 많다. 사회역학이란 말을 널리 각인시키며 올해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아픔이 길이 되려면’, 11권짜리 대작 ‘춘추전국이야기’, 소설ㆍ영화ㆍ대중가요 등 대중문화로 우리 시대를 훑은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등은 완성도가 높은 책으로 호평 받았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새 정권 출범 이후 진행 중인 ‘적폐청산’과 함께 호흡을 맞춘 책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 ‘지방도시살생부’ ‘일상기술연구소’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지만, 실은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 주변의 문제를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점을 평가 받았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발행
‘사회역학자’들은 사회적 경험이 어떻게 몸에 스미고, 병이 되는지를 추적한다. 저자는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타인에게 듣는 혐오 발언과 구직 과정에서 겪는 차별,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 경험도 우리를 병 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설명한다. 취업 과정에서의 차별,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의 차별 등을 연구해 실제 사회에서 만연한 ‘차별’이 어떻게 한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지에 대해 분석했고,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용서에 대하여
강남순 지음 · 동녘 발행
정치·철학·종교·심리학 등 다양한 인문학 영역을 넘나들며 연구를 해온 저자 강남순은 ‘용서’라는 하나의 주제를 철학적으로 성찰했다. 주로 신학적 영역에서 많이 다뤄져 온 ‘용서’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파고들며 그 의미를 깊이 파헤친다. 이전에 ‘용서’라는 주제는 자크 데리다나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한나 아렌트 등을 통해 단편적인 글로만 성찰돼왔다. 저자는 그 범위를 넓혀, 실질적인 용서의 이해와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다루며 고찰한다.
지능의 탄생
이대열 지음 · 바다출판사 발행
인공지능(AI)에 대한 연구가 지속될 수록, 그에 대한 두려움도 높아져만 간다. 이제는 AI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인간의 지능을 탐색한다. 저자는 뇌과학과 생물학, 경제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명의 진화와 인간의 지능 사이 연결 고리를 잇고 인간 뇌의 다양한 면모를 통찰한다. 그는 생물학이나 심리학이란 하나의 렌즈만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을 신경과학과 경제학, 심리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 지능의 다양한 면모를 탐색한다.
춘추전국이야기 시리즈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발행
2007년 기획 구상부터 2017년 완간까지 10년에 걸쳐 완성한 시리즈는 ‘춘추전국시대’를 국내 최초 정면으로 다룬 역사교양서이자, 대작이다. 200자 원고지 1만5,000매에 이르는 춘추전국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중국 고전의 원천이자 제자백가의 사상이 탄생한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대중적, 체계적으로 서술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저자는 수년 간 현장답사를 통해 입수한 사진과 지도 자료를 수록해 독자들이 당대를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연대 중심의 통사를 지양하고 가벼운 필치로 서술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발행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앞으로 바꿔야 할 세상에 대한 기록을 진솔하게 남겼다.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자신이 겪은 한국 현대사를 담담히 풀어내는 한편, 20년 가까운 기자 생활 동안 경제・문화・통일외교・검찰・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성역 없이 취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와 언론의 문제점을 냉철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비롯한 어린 세대들이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간미 넘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국민 모두의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개혁안을 제시한다.
사이언스 빌리지
김병민 지음 · 동아시아 발행
샘솟는 궁금증과 넘치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과학 도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구성된 사이언스 빌리지는 부자(父子)가 주변 현상을 과학적으로 함께 풀어가며 상상의 폭을 넓히는 과정을 담아냈다. 높은 수준을 요하는 질문들이 아닌,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꾸며지는 책은 높아만 보였던 과학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또한 풍부한 영감을 주는 다양한 그림들이 함께 실려 청소년 과학 교양서로서의 높은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박숙자 지음 · 푸른역사 발행
고뇌하고 좌절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문학사에서 찾아 담아냈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스테디셀러를 쓴 전혜린과 인간답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스러진 전태일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담아냈다. 해방 이후 ‘제 몫’을 찾지 못했던 ‘청년’들의 삶을 조명한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지음 · 창비 발행
법원의 정점인 대법원장, 그리고 대법원의 중추인 대법관의 임명 과정을 전격 해부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법조계 내에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이들의 임명 전 과정이 비로소 밝혀진다. 저자는 2005년 노무현 정부기 이용훈 대법원장이 임명되는 전 과정을 밀착 취재해 생생하게 들려주고, 그 전에 일어난 ‘사법개혁’의 움직임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대법원장 후보군을 추려나갔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방도시 살생부
마강래 지음 · 개마고원 발행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이젠 남의 일인 양 모두가 무심해져 있는 지방 쇠퇴 문제에 주목한다. 저자는 ‘골고루’보다는 ‘선택과 집중'에, 성장과 팽창이 아닌 축소와 압축에 답을 찾아 나간다. 숱한 지방도시 답사 경험과 해외 도시 사례, 각종 연구 데이터를 논거로 제시하며 '지방 중소도시 재생은 압축도시 전략으로!'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림 스타일로 데이터를 가시화한 도표 등을 사용해 일반 독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준다.
일상기술연구소
제현주 등 지음 · 어크로스 발행
근심과 걱정으로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일상을 만들어가는 비결을 알려준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좋은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팟캐스트 ‘일상기술 연구소’의 해법을 모은 책이다. 헛헛한 마음만큼 카드값이 불어나는 이들을 위한 ‘돈 관리의 기술’부터 작심삼일에서 벗어나는 ‘배움의 기술’, 운동 자존감을 키우는 ‘생활 체력의 기술’까지, 하루하루 마음속을 파고드는 불안을 관리하고 좀 더 만족스러운 일상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10가지 핵심 기술을 모아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박혜인(중앙대 정치국제학과 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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