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과 통화, 비핵화 대책 논의
해상봉쇄 등 비군사 압박 최대치로
北 레드라인 넘지 않았다고 판단
유엔사 파견국 회의… 새 제재 체계
강경층에선 “대북타격” 목소리 커져
북한이 29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워싱턴까지 사정권에 두면서 미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미사일 발사 불과 3시간 만에 정부 성명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별도로 유엔사 파견국 회의를 소집, 대북 해상 봉쇄 논의에 착수할 뜻을 밝혔다. 효과적으로 대북 압박의 고삐를 죄기 위해 제재의 새로운 틀을 도입하겠다는 강수를 밝힌 것이다.
또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를 즉시 단행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용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경제ㆍ외교적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일단 비군사적 해법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지지세력인 강경 보수층에서 “전쟁 불사”는 물론, “대북 정밀타격” 등 차라리 북한을 폭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과연 미국이 언제까지 강력한 군사옵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해 “우리가 다룰 상황”이라며 “우리가 처리하겠다는 얘기만 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대북 접근법의 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그간 대북 군사옵션을 경고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추가 조치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입을 닫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대응 내용을 이튿날 트위터를 통해 발 빠르게 공개했다 그는 “오늘 북한에 대한 주요 추가 제재가 내려진다. 이 상황은 처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상봉쇄나 원유공급 중단 등 최고 수준의 대북 압박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실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전날 성명을 내고 북한의 ICBM 도발을 규탄하면서 “모든 국가는 강력한 경제ㆍ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국제 사회는 기존 유엔 제재 조치 이행뿐 아니라, 북한을 오가는 물품의 해상 운송을 금지하는 권리를 포함해 해상 안보를 증진하는 추가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외교 옵션은 현재로선 여전히 열려 있고, 실행 가능한 옵션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더해 시 주석에게도 중국이 고강도 대북 압박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이날 시 주석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북한이 도발을 끝내고 비핵화의 길로 돌아오도록 중국이 모든 가용수단을 써 설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커지는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하는 확고한 결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 핵 비확산 체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중국의 확고부동한 목표”라며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는 트럼프 정부가 군사옵션 대신에 해상봉쇄 등을 통해 ‘최대 압박’이란 기존 대북 정책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신형 ICBM ‘화성-15형’ 발사를 계기로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가 대폭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미사일 발사의 의미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옵션 경고와 함께 각국이 대북 경제 압박에 나서도록 단결시키는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 말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통화에서도 군사옵션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 정부는 이 같은 대북 압박 강화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와 별도로 ‘유엔사 파견국 회의’라는 새로운 대북 제재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틸러슨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은 캐나다와 협력해 유엔사 파견국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 및 다른 핵심 관계 국가들도 포함해서 국제사회가 어떻게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지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엔사 파견국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프랑스 벨기에 등 16개국으로, 미 정부가 대북 제재를 위해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처음이다. 그간 유명무실했던 유엔사를 고리로 한국전쟁 참전국이 중심이 된 새로운 대북 제재 논의 틀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한국 및 일본과 더불어 16개국을 모으는 것은 매우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엔 안보리 회의가 중국의 미온적 반응으로 매번 난항을 겪었던 상황에서 중국을 제외한 채 유엔 제재와 별도로 독자적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해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려는 의중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해상 운송 금지’의 경우 북한의 모든 선박이나 북한에 기항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는 나라를 확대하기 위해 이 회의체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차원에선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오른 선박에 한해 회원국의 입항이 금지되는데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은 북한에 기항한 제3국 선박의 입항까지 금지하는 독자 제재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처럼 북한 봉쇄에 초점을 두고 있으나 강경 보수층에선 대북 타격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네오콘의 이론적 근거지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크 티센 연구원은 이날 AEI 블로그 기고문에서 “북한은 대화 의지가 없다는 게 명백하다. 김정은에게 취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은 없다”며 북한을 탄도미사일 비행금지 구역과 핵실험 금지구역으로 선포해 이를 위반할 경우 미사일 시험과 핵실험 장소를 제거하는 표적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강경파인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도 CNN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미치광이가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전쟁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권 파괴와 미 본토 파괴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북한 정권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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