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상가 이주 상인들 연신 한숨
손님 없어 3시쯤 점포 문 닫기도
#시장 내 점포 월세는 3배나 껑충
“재건축 어떻게든 빨리 됐으면”
“원래 공치는 날이 일년에 하루 이틀밖에 안 됐는데 이제는 만날이라. 일주일에 옷 한두 장밖에 못 판다 아이가. 불 나고 1년동안 화병 얻은 사람들 여기 엄청시리 많데이.”
2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길을 건너 250m가량 걸어야 보이는 4지구 대체상가 ‘베네시움’ 안은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냉기가 가득했다. ○○상회 간판 아래 옷감이며 옷들이 정리된 틈 사이로, 머리 허연 주인장은 신문을 보거나 멍하니 입구 쪽만 쳐다보며 “지엽다, 지여버”라는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손님 발길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뜸한 모습. 그나마 1층에나 보일 뿐, 3층과 4층 가게로 올라가자 사람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비어 있다. 답답하다며 건물 밖에 나와 있던 상인 이원수(76)씨는 “장사가 아니라 놀러 나오는 거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30일로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대형 화재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된다. 그날 오전 2시쯤 상가 쪽에서 시작된 원인 미상 불길은 4층짜리 건물에 모여 있던 점포 679개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59시간이나 살아 있던 불길에 속수무책으로 1,000억원 가까운 피해가 발생했다.
1년이 지났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의 터전이 사라져버렸어도 그냥 나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면서 시장으로 다시 뛰어들어 왔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개장 3개월이 지나도록 파리만 날리는 대체상가 상인들 불안감은 생각 이상이다.
화재가 나기 전만 해도 종업원 3명을 고용해 27㎡에 달하는 여성복 점포를 운영했던 김모(71)씨는 “지금처럼 가다간 1년도 안 돼서 여기 가게 전체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지금 8㎡ 남짓으로 줄어든 매장에서 옷을 팔고 있다. “원래 4지구가 이런저런 물건을 다 파는 종합상가라 파도가 치듯 사람들이 오갔었는데, 지금은 그때 20분의 1도 안 팔려.”
아예 매장으로 나오지 않는 상인도 부지기수다. 상인 강모(57)씨는 “모두 한 배를 탄 상황이라 망하면 다 같이 망한다고들 생각하고 있다. 그게 언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을 흐렸다. 오후 3시쯤 되자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퇴근하는 상인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 상인은 보상금 얘기를 꺼내자 “한 1,000만원 정도랑 생활비 정도 받았는데, 솔직히 큰 도움은 안 됐지”라고 했다.
대체상가 대신 시장 내 다른 상가에 세를 얻어 장사하는 이들도 있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 화재 후 월세가 3배 가량 오르면서 매장 유지 자체가 버거워진 탓이다. 최모(55)씨는 “월세가 너무 비싸서 식기류가 주요 품목인 지하층에 옷가게를 냈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화재로 1억원 정도 피해를 입었다.
상인들끼리 갈등의 골도 생겼다. 노점이 아닌 상가 안 복도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경찰은 밝혔지만, 여전히 많은 상인은 노점과 야시장 탓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4지구 재건축을 두고도 이견이 심해 논의가 답보 상태다.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은 상인도 있다. 대체상가 1층에서 액세서리점을 운영하는 이모(42)씨는 “3개월 만에 ‘대박 나는’ 가게가 어디 있겠냐”면서 “홍보가 잘 되면 우리도 먹고 살 길이 생길 테니,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밝게 웃었다.
대구=글ㆍ사진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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