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상한액 인상’ 약속했지만…
여론수렴 등 사전작업 하지 않아
부처간 엇박자로 개정안 부결돼
“권익위, 정부 눈치보나” 의심도
위원장, 국회 일정에 투표 불참
“반대 할 수 없어 회피” 뒷말 무성
정부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고 아마추어 수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주무 기관인 국민권익위원장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직접 나서 ‘내년 설 전에는 선물 상한액을 현실에 맞게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부처간 엇박자로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시행된 지 1년 밖에 안 된 법을 바꾸려 한다는 반대 입장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명분 쌓기와 여론수렴, 집행부처인 권익위 내 의견조율 등 사전 정지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부가 밀어붙이면서 혼란만 가중시키게 됐다.
이 같은 비판은 28일 열린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 안건이 부결되면서 불거지고 있다. 전원위원은 박은정 위원장을 포함 총 15명인데 이날은 12명만이 참석, 6명이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 통과를 위한 과반에 실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안건 통과를 시작으로 당정협의를 거쳐 29일 대국민보고대회를 열겠다는 당초 계획은 수포가 됐다.
무엇보다 이날 결론에 ‘정부 내 소통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8월 말 업무보고에서 권익위에 “청탁금지법의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 분석, 평가해 대국민 보고를 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농축수산업 등 일부 업계에서의 강한 반발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안을 만들어보라는 뜻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발 더 나가 19일 양재동 농산물 유통 현장에서 “늦어도 설 대목에는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구체적인 시점까지 언급했다. 당연히 정부 내 상당한 공감이 이뤄졌고 그것이 정부 의지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고, 이날 권익위 전원회의에서 현실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당연히 통상적인 정부 부처에서 하는 정지 작업이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원위원 내 반대 의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국회일정을 이유로 회의에 불참한 박 위원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김영란법)을 논하는 자리에 정작 위원장이 빠진 것은 일종의 책임 회피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민감한 자리에서 (소신에 따라) 정부 입장에 반하는 반대표를 던질 수 없어 안 나온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괜히 긁어 부스럼만 남기게 했다는 지적이다. 당장 권익위는 물론이고, 정부로서는 부패 척결 의지를 의심받게 됐다. 김삼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사법팀장은 “‘3ㆍ5ㆍ10 상한액’(음식ㆍ선물ㆍ경조사비)이 합리적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임에도 개정을 추진했다는 건 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단절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홍번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기획실장은 “권익위로서도 ‘정부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잔뜩 기대했던 농축수산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서툰 정책추진이 향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말이 무성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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