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례적 수정 흔적 논란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가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전병헌(59)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구속영장 청구서 ‘발부’란에 도장을 찍었다가 지운 것으로 나타났다. 수정 후 기각 결정을 내렸다는 의미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단순 실수인지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전 전 수석의 사전구속영장 청구서 상단 ‘발부’란에 도장이 찍혔다가 수정 테이프(일명 ‘화이트’)로 지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기각’란에도 도장이 찍혀 있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다. 먼저 이날 영장심사를 담당한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도장을 잘못 찍어 이를 정정했을 경우다. 상식적으론 벌어지기 어려운 해프닝이지만, 단순 실수 가능성이다.
강 판사가 원래 영장 발부 쪽으로 기울었다가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전 전 수석의 구속 필요성에 대한 검찰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강 판사가 당초 발부로 마음을 굳혔으나 법원 내 압력이나 외압에 의해 결심을 바꾼 것이라면 법관 독립성 훼손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피의자 인신구속여부를 결정하는 구속영장청구서에 이런 흔적이 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구속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대형 부패 사건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 지난 2015년 4월 28일 수백억원 대 횡령ㆍ배임ㆍ상습도박 등 혐의를 받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상단의 ‘발부’란에 도장이 찍혔지만 수정테이프로 수정한 뒤 ‘기각’란에 도장이 찍혀 장 회장 영장 기각 배경에 의혹이 일었다. 당시 법원은 “영장전담판사의 순간적인 부주의”라고 해명했고, 영장 재청구 끝에 장 회장은 구속됐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확인이 어렵다”며 “여러 영장 청구서에 도장을 찍다가 헷갈려서 ‘화이트’로 고치는 경우도 있지만, 종국적으로 발부 또는 기각된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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