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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앤 보니 (11월 28일)

입력
2017.11.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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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카리브 해의 여성 해적 앤 보니.
18세기 카리브 해의 여성 해적 앤 보니.

2008년 11월 시사주간지 ‘타임’은 ‘대담한 해적 10’이라는 기획기사로 기원전 7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납치한 동지중해 시칠리아의 해적부터 미 해군 항공모함 니미츠호보다 3배나 큰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를 나포한 소말리아 해적까지 열거했다 19세기 초 남중국해 해상 무역상들을 공포에 떨게 한 전설의 여성 해적 ‘칭시(Ching Shih)’도 포함됐다. 1807년 해적 두목이던 남편(Zheng Yi)이 죽으면서 ‘가업’을 이은 그는 자신의 ‘붉은 함대(Red-Falg Fleet)’로 남중국해를 누비며 청나라 조정의 골치를 썩였고, 급기야 조정이 과거를 용서할 테니 해적질을 그만두라고 제안했다는 해적이다. 그는 막대한 약탈 보화를 지닌 채 부하들과 함께 1810년 은퇴, 도박장을 운영하다가 1844년 숨졌다. 타임은 칭시가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 영감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하지만 카리브 해의 여성 해적으로는 앤 보니(Anne Bonny)와 매리 리드(가Mary Read)가 있었다. 그는 바하마제도 해적 거점 뉴프로비던스(New Providence)의 나소(Nassau)에 적을 두고 칼리코 레컴(Calico Rackam)의 해적단에서 활동했다.

보니는 아일랜드 킨세일에서 한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 집 가정부였다. 불륜 사실이 발각되자 둘은 딸과 함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도피했다. 보니는 어려서부터 남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성미도 거칠었다고 한다. 성 추행하려던 남자를 때려 몇 주간 입원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16세에 결혼한 남자(James Bonny)가 해적이었다. 그는 남편이 총독의 끄나풀이란 사실을 안 뒤 남편을 버리고 래컴의 해적단에 투신해 그의 연인이 됐고, 또 다른 여성 해적 메리 리드(Mary Read)를 만났다. 둘은 잔인하고 용맹스럽기가 사내들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1720년 10월, 스페인 상선을 털고 곯아 떨어졌다가 영국 해군의 습격으로 전원 연행돼 11월 28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보니와 리드 역시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임신한 사실이 확인돼 형 집행을 면했다. 리드는 이듬해 출산 후유증으로 숨졌지만, 보니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귀국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다시 배를 탔다는 전설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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