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소재 가리고 절차 투명화
“이 피의자는 죄질이 나쁘니 구속영장 치겠습니다.”(주임검사)
“내가 보기에는 불구속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다. 다시 검토해보라.”(부장검사)
검찰 안에서 상급자와 담당 검사간 의견이 이처럼 엇갈린다면 앞으로 기록으로 다 남게 된다. 사건처리에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담당 검사가 고참 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도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의 ‘검찰 의사결정 투명화’ 권고안(3ㆍ4차)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이는 문 총장이 당초 검찰 개혁위에 검토해주도록 요청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를 구체적인 안으로 정비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개혁위는 일선 검찰청에서 상급자 지휘ㆍ지시를 기록하는 방안을 짜서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모든 지시사항은 아니고, 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 등에서 내부 이견이 있으면 기록으로 남기란 것이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각자 의견을 모두 써서 저장하는 식이다.
그 동안 검찰 조직 안에선 선배 검사와 후배간 의견이 다를 때, 상사의 설득이나 지적으로 후배 의견이 묻히면 그 흔적이 남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진 도출된 결론만 남았지, 거기에 다다른 과정은 검사 개개인의 ‘기억’ 속에만 있었다”며 “앞으로는 서로 판단이 다르면 설사 ‘합의’에 이르더라도 그 과정을 다 남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검사들은 “맞는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소재 검찰청 한 부장검사는 “의견이 다른 경우는 크게 없지만 결과적으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불필요한 의혹에 시달릴 가능성이 확 줄게 될 것이란 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인 건 맞다”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일선청 검사는 “그간 판단이 어려운 사건은 주로 부장검사들이 주축이 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서면으로 남겼는데, 대부분 주요사건에 국한됐다”며 “주목 받지 못하는 사건도 투명하게 처리되면 검사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체로 “부서 내 의견 대립은 사실 많지 않아 일일이 기록을 남기는 데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개혁위는 또 “대검도 지방검찰청 보고 사건에 지휘권을 행사하거나 의견을 낼 때 서면 등으로 기록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대검이 상급자의 지휘ㆍ지시에 수긍하기 어려운 검사의 이의제기권도 구체화하는 지침을 제정해 서둘러 시행할 것도 주문했다. 개혁위는 이의 절차로 ▦이의 제기 전 숙의 ▦서면으로 이의 ▦기관장 지시 등 필요한 조치에 따를 의무 등을 담도록 했다. 특히, 이의를 제기한 검사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 되며, 관련 서류는 10년간 보존하라고 했다. 문 총장은 “윗사람이라고 오류가 없는 건 아니다. 평검사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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