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얀마軍 사령관과 깜짝면담
“전환기 커다란 책임 이야기 나눠”
28일 수치 등 실권자들과 회동
침묵하면 도덕적 신뢰 잃게 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가톨릭교회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방문이지만, 미얀마 정부군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탄압으로 62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한 상황에서 교황이 로힝야족 문제를 언급할지를 두고 긴장이 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해 이튿날인 27일 오후 1시 미얀마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환영 행사에 참석한 교황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이날 저녁, 미얀마 군을 대표하는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과 예정에 없던 15분 간의 ‘비공식 환담’을 가졌다. 당초 두 사람은 30일 만날 계획이었으나, 교황이 머무르던 미얀마 대주교 거쳐를 흘라잉 사령관이 갑작스레 찾아 면담이 이뤄졌다. 교황청 대변인은 이 자리에 대해 “전환기 미얀마 당국자들의 커다란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만 설명했다.
교황은 28일 수도 네피도로 이동해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틴 초 대통령 등과 회동한다. 이어 29일 미얀마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고 불교계 원로들과 현지 주교단을 만날 예정이며, 다음날 청년들과 만남을 끝으로 미얀마 일정을 마무리하고 방글라데시로 넘어간다.
이번 방문의 최대 관심사는 교황이 로힝야족 탄압 사태를 직접 거론하느냐다. 난민ㆍ인권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 온 교황이지만, 미얀마 한가운데서 직접 로힝야 탄압을 지적할 경우 반(反)로힝야 여론을 자극해 폭력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미얀마 사회는 로힝야족을 비하적 표현인 ‘벵갈리’로 부르고 있어 ‘로힝야’라는 용어 사용 자체에도 민감하다. 이에 미얀마 가톨릭교 최고 성직자인 마웅 보 추기경은 앞서 9일 교황청에 “‘로힝야’를 말하지 말아달라“며 “교황이 어느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슬람계 소수민족의 고난을 다뤄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교황의 로힝야 문제 개입으로 우려되는 폭력 사태란 미얀마 내 가톨릭 신자를 향한 보복성 공격을 말한다. 인구 대다수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가톨릭 신도는 전체 인구의 약 1%인 65만9,000여명. 특히 전체 16개 가톨릭 교구 중 15개가 정부군ㆍ반군 간 내전 지역인 북부 카친주와 샨주에 몰려 있어 위험 지대에 놓여 있다. 더불어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이 교황의 메시지를 악용해 로힝야 보호를 명분으로 한 ‘성전’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반향을 걱정해 무조건 침묵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교황은 지난 8월 25일 로힝야족 무장세력의 라카인주 군경초소 습격 사건으로 대로힝야 탄압이 급속도로 확산된 이래 수차례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다. 미얀마 방문이 확정된 지난달만 해도 “20만명에 달하는 로힝야족 아이들이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한 채 난민 수용소에 있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호소했다. 일관된 목소리를 내오던 그가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대에서 침묵할 경우 도덕적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딜레마“라 부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치 국가자문역은 로힝야족 사태에 침묵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 측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교황은 미얀마 방문 직전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나는 하느님의 복음, 화해와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러 간다”며 “이번 방문은 가톨릭 신자의 섬김과 만인의 위엄을 설파하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출발 전 성베드로 광장에서도 “나의 존재가 친화와 희망의 신호가 될 수 있도록 성도들이 함께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교황의 공식 일정에 학살 사태 현장인 라카인주 방문 계획은 없다. 다만 30일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공식 면담하고, 내달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열리는 종교 간 회의에서 소수의 로힝야족 대표단을 대면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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