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빌린 저신용층보다 ‘프라임급’ 대출을 받은 고신용 주택투자자들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촉발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6일 한국금융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의 신용공급과 채무불이행에 대한 논쟁’ 보고서에서 “미국에서 금융위기 전 빚을 크게 늘린 계층은 중산층 이상의 고신용 채무자였다”며 “금융위기 기간 동안 채무불이행, 주택압류 대부분이 이들 계층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저신용 채무자에 대한 과도한 신용공급과 이들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주택시장 붕괴가 지적된 것과 다른 분석이다.
실제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전미경제연구소 ‘신용 증가와 금융위기: 새로운 내러티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저신용 채무자의 부채 증가율엔 거의 변화가 없었다. 2008년부터 2009년 초반까지 금융위기 기간 동안 전체 채무불이행 가운데 저신용 채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30%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이 기간 빚을 급격히 늘린 계층은 중ㆍ고신용자였다. 그 중에서도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두 건 이상 받은 채무자를 중심으로 연체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지난 2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 중 고신용ㆍ고소득 우량 차주의 부채 금액이 전체의 65% 내외를 차지한다”며 “상대적으로 우량한 차주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양적으로 많이 늘었지만 신용이 높은 우량 차주 중심이기 때문에 빚 상환 능력이 양호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고서를 쓴 박춘성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아직도 팽창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개인 수준의 미시데이터를 구축해 신용증가와 연체 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우리나라 가계부채 1,419조1,000억원(3분기 기준)을 통계청의 올해 가구 추계(1,952만 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7,269만원의 빚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부채가 7,0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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