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
승부차기 혈투 끝 5-4
클래식팀이 챌린지팀 첫 제압
부산 이정협, 레오 등 투지에도
고 조진호 감독에 승격 못 바쳐
지난 달 10일 고(故) 조진호 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상가(喪家)에서 부산 공격수 레오(27)를 봤다. 지난 7월 대구FC에서 이적해 온 레오는 부상으로 거의 경기를 못 뛰고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레오를 조진호 감독은 잘 다독였다고 한다. 평소 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그는 조 감독 상가를 오랜 시간 지켰다. 최만희 부산 아이파크 사장은 “외국인 선수도 저런 걸 보면 조 감독이 선수들에게 신망이 참 컸다”고 안타까워했다. 조 감독의 애제자인 공격수 이정협(27)은 “감독님은 올 시즌 미팅 때마다 ‘승격’이란 말을 달고 사셨다. 그런데 그걸 못 보고 돌아가시다니”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부산은 끝내 조진호 감독에게 승격을 바치지 못했다.
K리그 챌린지(2부) 2위 부산은 26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클래식(1부) 11위 상주상무에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해 승격에 실패했다. 이정협은 이날 풀타임을 뛰며 상대 수비를 헤집었다. 레오는 연장 전반 교체로 들어갔다. 8월 이후 약 3개월 만에 실전이라 감각이 무뎠지만 상대 골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승엽(42) 부산 감독대행은 “레오가 경기 감각이 떨어져 투입을 고민했지만 뛰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간절한 마음들도 하늘에 닿지 못했다.
이날 경기장의 원정 응원석에는 조진호 감독을 기리는 문구와 사진이 내걸렸다. ‘Go To The K-League Classic(K리그 클래식으로 가자)’라는 현수막도 붙었다.
지난 두 시즌을 챌린지에서 보낸 부산은 작년 말 조진호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해 승격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러나 10월 10일 조진호 감독은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마흔 일곱의 젊은 나이에 별세하고 말았다.
부산은 비보 속에서 챌린지 정규리그를 2위로 마친 뒤 아산 무궁화와의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3-0 완승을 거두고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상대는 클래식 11위 상주. 부산은 지난 22일 홈 1차전에서 0-1로 져 불리한 위치였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전반 16분 부산 호물로(22)가 깔끔하게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반전 드라마가 시작되는 듯했다. 상주 유준수(29)가 후반 17분 동점골을 넣었지만 비디오판독 결과 오프사이드로 판정이 났다. 3분 뒤 이번에는 부산 박준태(28)의 슈팅이 상주 그물을 갈랐지만 역시 비디오판독을 통해 오프사이드가 되는 바람에 득점이 취소됐다. 연장에서도 더 이상 득점하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한국 프로축구에서 처음 ‘아바(ABBA)’ 방식이 시행됐다. A팀(선축), B팀(후축)이 번갈아 킥을 하는 과거와 달리 ‘ABBAABBA’ 순서로 차는 방식이다. 팝 그룹의 이름을 따 ‘아바’라고 한다. 부산 4번째 키커 고경민(30)이 실축하고 상주는 5명이 모두 성공해 상주의 5-4 승리로 끝이 났다.
상주는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펼쳐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처음으로 클래식 팀이 잔류하는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2014년부터 지난 해까지는 모두 챌린지 팀이 이겨 승격을 맛봤지만 올해 전통이 깨졌다.
피 말리는 승부 끝에 클래식 잔류에 성공했지만 경기 뒤 김태완(46) 상주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부산에도 상무 출신 선수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 안타깝다. 승부차기를 실수한 (고)경민이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무엇보다 조진호 감독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조 감독 뒤를 이어 올 시즌 팀을 이끈 이승엽 부산 감독대행은 “조 감독님께 승격을 못 바쳐 죄송하다”고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선수들에게는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승격은 물 건너갔지만 원정 온 부산 팬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우는 부산 선수들을 향해 “힘을 내라. 부산”을 외치며 힘을 실어줬다.
올 시즌 프로축구는 모두 마무리됐지만 부산의 2017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산은 오는 29일과 다음 달 3일, 홈과 원정을 오가며 울산 현대와 FA컵 결승전을 치른다.
상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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