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사절 불러 경기장 소개
유엔 휴전 결의 이후 홍보 ‘박차’
한미 훈련 연기 등 대미 설득에
합의 어긴 중국 공세에도 방어만
“기회” “책임”… 北에도 계속 구애
정부가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흥행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이 두 달 넘게 도발을 자제하는데도 한반도 정세가 아직은 뚜렷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는 탓이다. 심지어 중국이 각종 채널을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관련 추가 조치를 요구하며 어렵사리 갈등을 봉합한 지난달 한중 간 합의를 무시하고 있지만, 정부는 대중 관계에서 일정 부분 수세를 감내하며 평창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외교부는 25일 각국의 주한 대사와 관계자, 상공인 등 200여명을 이끌고 평창 올림픽ㆍ패럴림픽 경기장과 강원도의 각종 인프라를 찾아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강경화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관계자와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을 위시한 주한미군 관계자,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내외신 취재진 등이 대거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다음달 정식 개통하는 고속철(KTX) 경강선을 타고 이동해 강릉 아이스하키ㆍ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평창 개ㆍ폐회식장을 살펴봤다.
강릉 한 호텔에서 이뤄진 오찬 인사말에서 강경화 장관은 평창의 ‘평’(平)이 ‘평화’, ‘창’(昌)이 ‘번영’을 각각 의미한다고 소개하고, “2018 평창 올림픽은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한국의 노력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기자들에게는 “계속 우리 재외공관들을 통해 선수들이 참가하는 나라들을 상대로는 준비 사항을 브리핑하고 선수를 안 보내는 나라들에도 많은 관광객을 보내주십사 하는 외교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안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던 정부가 ‘평화 올림픽’ 홍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건 ‘올림픽 휴전 결의’가 계기다. 유엔은 13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 총회에서 평창 올림픽을 전후해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표결 없는 컨센서스(전원동의)로 채택했다. 주(主)제안국인 우리 정부 주도로 초안이 작성된 휴전 결의에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150여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통상 결의안 채택 때 정부 대표 1명만 발언하는 게 관례지만 우리 요청에 따른 총회 결정으로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인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씨가 이례적으로 추가 발언을 했다.
이후 정부의 전방위 외교가 뒤따랐다. 우선 비공식이긴 하지만 청와대발(發)로 내년 올림픽 기간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연기 검토 가능성이 제기됐다. “검토가 가능한 옵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세계가 평창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르겠다고 결의한 만큼, 미국을 설득해서라도 올림픽 기간 한미 훈련 중단 같은 조치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스스로 평화 올림픽을 치러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6일부터 내달 1일까지 이뤄지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방미도 비슷한 맥락이다. 올림픽 때까지 평화 분위기를 관리하겠다는 정부 의향이 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5박 6일 간의 방미 기간 동안 천 차관은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미 정부 관계자들과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을 의논하는 한편, 유엔인구기금ㆍ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관계자들과도 만난다. 대북 지원을 위한 국제기구 공여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대중 외교도 마찬가지다. 사드 문제를 봉인하자는 취지의 양국 간 10ㆍ31 합의를 어기고 거듭 우리에게 ‘3불’(사드 추가 배치, 미 미사일방어(MD)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등 불가) 이행을 위한 추가 행동을 재차 촉구하는 중국 측과 우리 정부가 가급적 맞부딪치지 않으려는 것 역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창 올림픽 계기 방한이 ‘평창 구상’ 실현에 긴요하기 때문이다. 한중일 등 동북아 3국에서 2년 터울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그 시작인 평창 올림픽에서 동북아 평화 구축의 불씨를 지핀 뒤 불길을 확산한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이다.
북한을 향한 구애도 계속되고 있다. 25일 평창 올림픽 시설 시찰 행사 자리에서 강경화 장관은 “얼마 전 유엔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고 북한도 채택에 동참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정치적 상황과 별도로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 기여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유엔 휴전 결의안 채택 이튿날인 15일 주한 유럽연합(EU)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려면 북한 참여가 필요하다”며 “평창 올림픽 참가는 북한에도 국제사회 일원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아직 신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 “내기를 한다면 평창 올림픽에 온다는 쪽에 걸겠다”며 “애초 참가하지 않을 거였으면 왜 돈을 써가면서 대회에 참가해 피겨 페어 출전권을 땄겠느냐”고 반문했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도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북한에게 평화 공세를 펼 수 있는 기회”라며 “분명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 능력 고도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려고 당분간 북한이 올림픽 참가 등으로 대화에 나설 것처럼 꾸밀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북한에 어떤 명분이 제공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우태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 종목 출전을 위해 북한이 평창에 올지 장담할 수 없는 만큼 북한 선수단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적극적 스포츠 외교를 통해 와일드카드나 번외 경기를 실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를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평창ㆍ강릉=외교부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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