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이흑산(34)이 태극기가 새겨진 권투바지(트렁크)를 입고 첫 국제전에서 통쾌한 KO승을 거뒀다.
이흑산은 25일 서울 강북구 신일고 체육관에서 열린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복싱M) 주관 웰터급(66.68㎏) 경기에서 3라운드 2분54초 만에 일본의 바바 카즈히로(25)를 3라운드 2분54초 만에 KO로 제압했다. 한국 망명 이후 프로로 전향한 뒤 그 동안 국내 선수들만 상대했던 이흑산은 프로 통산 6번째 경기이자, 첫 국제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6전 5승(3KO) 1무의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일본 랭킹 24위 바바는 이흑산의 파워와 맷집을 넘지 못하고 패해 프로 전적 14전 6승(3KO)2무6패를 기록했다.
키 180㎝, 양팔 길이 187cm로 웰터급에서 월등한 신체조건을 갖춘 이흑산은 왼손, 오른손 잽으로 거리를 유지한 뒤 왼손 훅으로 카운터를 노리는 전략을 짜고 링에 올랐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왼손 어퍼컷을 바바의 턱에 적중시켰다. 치명타를 맞은 바바는 주심이 텐 카운트를 세는 동안 일어서려고 했으나 다시 쓰러졌고, 바바 측은 수건을 던지며 경기를 기권했다.
승리 후 경기장을 찾은 많은 학생에게 둘러싸인 이흑산은 “첫 국제전에서 승리해 무척 기쁘다”며 “나를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을 위해 꼭 KO로 이기고 싶었는데, 그 약속을 지켜 매우 좋다”고 웃었다. 이어 “3라운드에서 잽을 계속 날리며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렸고, 정확하게 턱에 펀치를 꽂아 넣었다”면서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카메룬 군대 소속의 복싱 선수였던 이흑산은 2015년 8월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 군인선수권대회에 카메룬 대표로 참가했다. 이 때 그는 국내 망명을 신청했다. 군인 신분으로 탈영이었지만 강제 송환의 위기 속에서도 샌드백을 두드렸다.
이경훈 코치(전 한국 미들급 챔피언)를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프로에 입문한 이흑산은 국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올해 5월27일에는 복싱M 슈퍼웰터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고, 드디어 7월에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국내에서 적수를 찾지 못해 자신보다 체급이 높은 선수들과 대적하다가 한일전이 된 첫 국제전에서 화끈한 KO승을 거뒀다. 그는 자신을 “카메룬-코리안”이라고 했다.
이흑산은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황현철 복싱M 대표는 “이흑산과 한국 웰터급 최강전 우승자 정마루(30)가 내년 4월 WBA 아시아 타이틀매치를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정마루가 내달 일본 랭킹 1위 재일동포 복서 윤문현과 경기에서 승리하면 둘의 대결이 성사된다. 이경훈 코치는 “이흑산이 정마루를 이겨서 아시아 벨트를 차지하면 세계 랭킹전을 치를 기회가 생긴다”면서 “그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잘 다듬어보겠다”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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